정비사업 수주전에서 건설사들이 제시하는 사업조건은 부동산시장 경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장 하락세와 금리 인상, 건설 원자재가격 상승 등이 맞물린다면 건설사들은 조합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그만큼 건설사들이 경쟁을 기피하고, 무조건 따고 보자 식이 아닌 선별적 수주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공권에 관심을 보이는 건설사라도 있다면 다행인 일이다. 건설사들의 발길이 뜸한 곳은 이미 시작한 사업은 진행해야 하기에 조합이 직접 찾아 나서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시장 혹한기를 거친다면 다시 따스한 봄날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부동산시장은 하락기와 상승기가 되풀이되는 순환의 연속으로 지난 2008년 미분양이 무려 13만가구 이상으로 최다를 기록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때 성공을 위한 제반마련에 돌입한 초기 단계의 사업장들은 상승기에 분양 대성공을 이뤘다.

[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미분양 대책비 요구, 갑과 을이 바뀐다=부동산시장 하향세에는 정비사업도 동반 침체를 겪으면서 시공자 선정 역시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다. 그나마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들이 한 곳이라도 있다면 다행인 일이지만, 사업조건은 조합의 기대치보다 하향 조절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미 시작한 사업은 추진해야 하기에 시공자를 선정한다기보다는 조건을 낮춰서라도 모셔 와야 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갑’이 ‘을’로 바뀌는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제시될 수 있는 사업조건은 ‘미분양 대책비’ 마련이다. 말 그대로 시공자가 미분양을 대비해 별도의 비용 책정을 조합에 요구하는 것이다. 이 비용은 분양 시점에서 홍보, 할인 등을 위해 사용한다. 미분양을 줄이기 위해 할인되는 비용을 사실상 조합이 부담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조합의 고충은 커질 수밖에 없다. 시장 경기가 활황일 경우 건설사가 제시하는 책임분양과는 정반대의 조건이다.

대표적으로는 약 10년 전 왕십리뉴타운 일대의 사례가 있다. 현재 이 일대는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역세권, 직주근접, 학군 등의 부문에서 우수한 입지조건을 갖췄다는 평가와 함께 ‘억’ 소리 나는 몸값을 자랑하기에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현금청산 최소 비율 정해라=‘현금청산 최소 비율’을 정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역시 시공자를 변경하거나 본계약 협상 직전 등의 경우 조합이 미분양을 우려한 건설사로부터 요구 받는 내용이다.

건설사로서는 일종의 자구책이지만, 조합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요소다. 분양신청보다 현금청산이 많다면 그만큼 일반분양분은 늘어난다. 시장 경기가 오름세라면 걱정할 일이 아니겠지만, 하향세의 경우라면 미분양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시공자는 본계약 체결 전 현금청산비율에 대한 마지노선을 정해야만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가 있다.

▲조합장 PR시대, 직접 찾아 나선다=이처럼 조합은 위기 속에서 불합리한 조건들을 제시받고, 그래도 사업은 추진해야하기에 수용 여부에 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다. 그나마 시공자를 선정했다면 다행일 수 있다. 시장이 하향세로 돌아서면 선택권은 건설사에게 쥐기 마련이다. 연속된 유찰 속에 수의계약조차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조합이 시공자를 선정하는 게 아니라 건설사가 사업 성공률이 높은 곳들을 선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조합장이 직접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다. 이른바 조합장 PR시대인 셈이다. ‘조합장이 세일즈맨’으로 불리는 순간이다. 조합장은 일일이 건설사들을 만나 입찰참여를 독려하고,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등 직접 홍보에 나서기도 한다. 이를 통해서라도 시공자 선정으로 이어진다면 다행이다. 다만, 이면에는 미분양을 우려한 대책비 마련, 현금청산 비율 책정 등을 요구받을 수 있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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