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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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전문관리업을 등록하지 않은 용역업체가 서면결의서를 징구하는 것은 도시정비법 위반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조합원의 권리나 의무 등에 영향을 미치는 총회의결 관련 업무는 정비업체의 업무인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에 해당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서면결의서 징구 업무를 위탁한 정비업체에 대한 처벌이 정당하다는 판결인 만큼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대법원 제2부(주심 천대엽)는 지난달 29일 A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에 대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 소송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판결한 원심판결을 확정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따르면 A정비업체는 재개발조합의 정기총회에 대한 홍보와 총회 안건과 관련된 서면결의서 징구 업무를 제3자에게 위탁해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검찰은 A정비업체가 위탁한 업무는 도시정비법에서 정하고 있는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반면 A정비업체는 서면결의서는 ‘동의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 데다, 총회 안건 관련 내용이 이미 조합원에게 안내된 만큼 법령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의 주요 쟁점은 서면결의서 징구가 도시정비법에서 정하고 있는 정비업체의 업무에 해당하는지였다. 현행 도시정비법 제102조에는 정비업체의 업무로 △조합설립의 동의 및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의 대행 △조합설립인가의 신청에 관한 업무의 대행 △사업성 검토 및 정비사업의 시행계획서의 작성 △설계자 및 시공자 선정에 관한 업무의 지원 △사업시행계획인가의 신청에 관한 업무의 대행 △관리처분계획의 수립에 관한 업무의 대행 등으로 정하고 있다.

문제는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라는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은 만큼 서면결의서도 정비사업의 동의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법상 조합설립이나 사업시행계획 등에 대한 동의는 서면동의서에 토지등소유자가 이름을 적은 후 지장을 날인하고, 신분증명서의 사본을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서면결의서 행사방법은 조합정관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동의서와 서면결의서의 행사방법 등에서 차이가 있는 만큼 정비사업의 동의 업무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원심인 광주지방법원은 A정비업체의 유죄를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는 정비사업 초기에 이뤄지는 조합설립인가와 관련된 동의절차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 피고인이 ‘정관의 변경, 관리처분계획의 수립 및 변경’ 등에 관한 업무가 동의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배척했다. 이미 조합원에게 안내됐더라도 정관의 변경뿐만 아니라 현금청산, 관리처분계획 수립, 자금의 차입과 상환방법, 권리귀속 및 비용부담에 관한 사항 등을 확정하는 내용이 포함된 총회의 서면결의서 징구 업무를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에 포함된다고 판단해 유죄인 1심 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도 원심의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비사업 시행과정에서 조합의 비전문성을 보완하는 한편 조합원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업추진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전문지식을 갖춘 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정비사업전문관리업 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또 정비업체가 추진위원회나 사업시행자로부터 위탁·자문을 요구받는 업무 범위를 정하고, 다른 용역업체 및 직원에게 해당 업무를 수행하게 하는 행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명시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정비사업전문관리업제도의 입법 취지에 비춰보면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는 조합설립 또는 정비사업의 시행 여부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며 “정비사업의 시행과정에서 조합원 등의 권리·의무·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한 동의 또는 총회의결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원심판결이 정비사업의 동의에 관한 업무와 죄형법정주의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피고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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