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의 소재=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제45조제5항에 따라 총회 의결 과정에서 서면결의서를 통한 의결권 행사가 일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총회 개최 전 표결집계 등의 명목으로 서면결의서를 사전에 개봉하는 경우, 해당 총회 결의 효력에 어떠한 영향이 있는 것인지 문제된다.

2. 관련 판례의 검토=재개발조합이 청산인 및 감사 해임에 관한 총회에 앞서 서면결의서가 들어 있는 우편봉투를 개봉하여 서면결의서를 모두 꺼내어 투표함 속에 넣어 놓은 사안에서 서울북부지방법원은 “도시정비법 또는 피고 정관에 반드시 총회에서 서면결의서가 개봉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합이 총회 이전에 표결집계 등의 원활한 업무처리를 위하여 서면결의서를 미리 개봉하여 그 결과를 취합하더라도 그 결의 내용이 대외적으로 유출되지 않는 이상 이를 두고 위법하다고 볼 수 없는 점, 서면결의서를 제출한 조합원들의 의사가 서면결의서의 내용과 다르다고 볼 만한 객관적인 자료를 전혀 찾을 수도 없는 점” 등을 이유로 서면결의서 관련 절차상 하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20.9.10. 선고 2018가합27267 판결).

그리고 재건축조합 시공사 선정 등에 관한 총회 전날 조합장이 조합원 이름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서면결의서 보관함을 개봉한 사안에서도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은 “피고의 조합장 등의 주도로 이 사건 총회 전날 이 사건 1 결의에 대한 서면결의서 보관함이 개봉되기는 하였으나 서면결의자가 이 사건 총회에서 중복 투표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서면결의서가 밀봉된 봉투의 겉면에 기재된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데 그치고 서면결의서를 그대로 다시 보관함에 넣어 봉인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관 및 피고의 감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동영상 촬영까지 이루어진 점” 등을 근거로 해당 총회 결의에 무효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15.12.18. 선고 2013가합102317 판결).

즉, 총회 개최 전 서면결의서를 미리 개봉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결의 내용이 대외적으로 유출되지 않고, 개봉 과정에서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관 또는 감사 등이 참관하고 동영상 촬영까지 이루어진 경우에는 해당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임원 선출을 위한 총회의 경우 대부분 정비사업조합이 서울시 표준선거관리규정을 따라 선거관리규정에 ‘무기명 비밀투표’ 원칙을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은 “재건축·재개발조합의 임원 선출에 관한 선거관리 절차상에 일부 잘못이 있는 경우에 그 잘못으로 인하여 자유로운 판단에 의한 투표를 방해하여 자유와 공정을 현저히 침해하고 그로 인하여 선출결의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지 여부 등을 참작하여 선출결의의 무효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에 있으므로(대법원 2014.12.11. 선고 2013다204690 판결 등 참조), 총회 결의 하자와 관련하여 일반적인 안건에 관한 총회 결의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필요가 있다.

이에 재개발조합의 임원 선임에 관한 총회에 앞서 홍보요원들이 서면결의서를 사전에 개봉한 사안에서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은 “조합원들로부터 서면결의서 187매를 징구한 홍보요원들이 이를 그대로 피고의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에게 전달하지 않은 채 이를 개봉하여 내용을 확인하고, 훼손하는 등의 행위를 함으로써 피고 업무규정에서 정한 무기명 비밀투표 원칙을 위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면결의용 투표지에 나타난 조합원들의 의사를 왜곡시켰을 여지도 상당하다고 할 것이고 그로 인하여 투표의 자유와 공정을 현저히 침해하고, 이 사건 결의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보아 해당 총회 결의가 무효라고 판단하였다(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2020.10.8. 선고 2019가합103514 판결).

그리고 임원 선임에 관한 총회에서 조합이 서면결의서를 우편, 팩스, 문자 전송 등의 방법으로 교부받은 사안에서도 최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조합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조합원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투표를 할 때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는 채무자 조합 선거관리규정에서 비밀투표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비밀투표의 원칙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위하여 필요한 원칙이므로 서면투표에 그 원칙이 전면적으로 배제될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점, 선거관리규정 제34조제4항이 조합 임원 등 선출을 위한 의결정족수를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같은 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비밀투표 원칙이 현장투표에만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밀투표가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눈이 두려워 자신의 의사를 거짓으로 표출함으로써 왜곡된 의사가 선거에 반영될 수 있다. 또 조합원 신원의 비밀이 보장되지 않으면 조합원에 대한 회유·외압이 발생할 수 있고, 그러한 조합원이 서면결의를 철회하여 선거 절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도시정비법상 조합장 선거에 공직선거법과 같은 엄격한 비밀투표의 원칙이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면이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비밀투표에 의해서 보장하려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의 가치가 훼손될 정도에 이르렀다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해당 총회 결의가 무효라고 판단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2.11.10.자 2022카합21313 결정 참조).

3. 결론=판례 내용을 종합하면 임원 선임 안건에 관한 총회에 앞서 서면결의서를 개봉하는 경우 비밀투표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의 의사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어 해당 총회 결의가 무효가 될 수 있으며, 일반 안건에 관한 총회의 경우에도 서먼결의서 사전 개봉으로 인해 해당 결의 내용이 대외적으로 유출되는 경우 역시 해당 총회 결의가 무효로 될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조합에서는 모든 안건에 관한 총회에서 원칙적으로 서면결의서 사전 개봉을 금지하는 것이 타당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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