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24조는 ‘관련 자료의 공개’라는 제목을 달고 ‘제1항’에서 정관, 용역업체의 선정계약서, 총회 등의 의사록, 사업시행계획서, 관리처분계획서, 공문서 등을 인터넷과 그 밖의 방법을 병행하여 공개하도록 정한다.

규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공개의무를 위반하거나 거짓 내용을 공개하였을 때 조합장을 비롯한 임원을 처벌하는 규정도 별도로 두었다.

같은 조 제4항에서는 조합원 등의 열람·복사 요청권을 규정한 후 그 요청에 응하지 않거나 허위 내용이 포함된 자료를 열람·복사해준 조합 임원을 처벌토록 하고 있다.

도시정비법의 자료공개나 열람·복사 규정은 조합원이나 토지등소유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투명한 조합운영을 도모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정비사업의 건전성과 조합원 전체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해당 규정들 덕분에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정비사업 조합들의 오랜 관행이 눈에 띌 만큼 개선되어 이제 원하기만 하면 조합원들이 사업과정에서 생성된 거의 모든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제도운영의 현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입법 취지와는 동떨어진 어지러운 광경을 마주치게 된다. 절대 다수 사례에서 발견되는 정보공개 요청의 실제 의도는 조합원의 알 권리 충족이 아니라 조합 임원, 특히 조합장 처벌을 위한 덫을 놓는 것이다.

단순 착오나 인력 부족 등 불가피한 사유로 일부 자료의 공개 누락이나 공개지연 상황이라도 벌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형사고발이 뒤따른다.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확정되면 즉시 조합장 지위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정보공개 제도가 조합장 교체의 간편한 수단쯤으로 남용되는 것이다.

제도의 남용이 도시정비법 위반 사안의 폭증으로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상황이 이와 같다면 법률전문가 나아가 수사기관이나 법원 등은 도시정비법 처벌규정의 해석·적용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처벌규정의 기계적·피상적 해석·적용이 편의적 고소·고발을 촉발함으로써 거꾸로 정보공개제도 남용 현상을 부추기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터무니없이 처벌범위를 확대하려는 해석론이 조금씩 퍼지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해석론에 따르면 열람·복사의 대상이 되는 자료가 도시정비법 제124조에서 나열된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도시정비법 제124조제4항이 ‘정비사업에 관한 서류 및 관련 자료’를 열람·복사의 대상으로 명기하고 있으니, 제124조제1항과 제4항 각호에 나열된 서류 및 관련 자료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정비사업에 관한 서류 및 관련 자료’이기만 하면 열람·복사 요청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제124조제4항에 등장하는 ‘정비사업에 관한 서류 및 관련 자료’라는 표현은 제1항 및 제4항 각호에 나열된 서류 및 관련 자료를 아우르기 위한 표현일 뿐 ‘제1항과 제4항에 나열된 것 외에 기타 모든 자료’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형벌법규를 유추 해석하거나 확장 해석하여 처벌을 확대하는 것은 형사법의 대원칙인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도시정비법 제125조에 규정된 “속기록·녹음 또는 영상자료”는 보관의무의 대상이지 공개의무의 대상이 아니라는 기존의 해석론도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간단히 극복된다. ‘속기록·녹음 또는 영상자료’ 역시 ‘정비사업에 관한 서류 및 관련 자료’에 해당함이 분명하니 열람·복사의 대상이 되고 거부하면 처벌로 연결될 수 있다. 설득력이 없다는 점잖은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국회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형벌법규를 만들어 처벌을 확대하는 아주 미개하고 몹쓸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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