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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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으면 서운할 지경이다. 정비사업장은 바야흐로 ‘하이엔드 브랜드’ 열풍이다. 지난 2013년 DL이앤씨의 ‘아크로’를 시작으로 대우건설, 현대건설, 롯데건설 등이 연달아 ‘써밋’, ‘디 에이치’, ‘르엘’ 등을 선보였다. 이어 지난 13일 포스코건설이 ‘오티에르’를 공식 론칭하고, SK에코플랜트도 이르면 오는 8월 중 하이엔드 브랜드 발표를 검토하면서 고급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건설사들이 앞 다퉈 하이엔드 브랜드를 내놓는 이유는 분명하다. 확실한 수주 경쟁력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수주 1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건설은 수주액 6조9,544억원 중 약 59.1%에 달하는 4조1,105억원을 ‘디 에이치’로 달성했다.

하지만 이런 고급화 전략에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이엔드 브랜드가 주가를 올리자 기존 브랜드들은 ‘들러리’ 신세로 전락하고, 조합들은 너도 나도 최고의 브랜드를 요구하면서 기존 시공자를 해제·교체하기도 한다. ‘핫’하게 떠오르는 하이엔드 브랜드들을 조명해본다.

 

[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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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이앤씨가 첫선 보이고 대우, 현대, 롯데, 포스코 등 뒤이어… 지역별 최초 사업장은

현재 우리나라 시공능력평가 TOP 10 건설사 중 5개사가 하이엔드 브랜드를 출시했다. 지난 2013년 DL이앤씨를 시작으로, 2014년 대우건설, 2015년 현대건설, 2019년 롯데건설, 2022년 포스코건설이 뒤를 이었다. 강남과 한강변 등 일부 부촌 지역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고급 브랜드들은 현재 서울 외곽지역 뿐 아니라 경기도, 지방광역시 등에도 제안되며 퍼져갔다.

DL이앤씨는 지난 1999년부터 주상복합, 오피스텔에 적용하던 ‘아크로’를 하이엔드 브랜드로 고급화했다. 현재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등에 다양하게 적용하고 있다.

아크로힐스 논현 조감도 [사진=DL이앤씨]
아크로힐스 논현 조감도 [사진=DL이앤씨]

서울권 최초 ‘아크로’ 입주 단지는 ‘아크로힐스 논현’이다. 지난 2014년 준공된 이 단지는 DL이앤씨가 선보인 최초 ‘아크로’ 단지이자 강남권 첫 단지로 이름을 올렸다. 서울 강북권에서는 지난 2020년 준공된 주상복합단지 ‘아크로 서울포레스트’가 있다.

우동1구역 재건축 조감도 [사진=DL이앤씨 제공]
우동1구역 재건축 조감도 [사진=DL이앤씨 제공]

지방 최초이자 부산 최초로 ‘아크로’를 적용해 이목이 집중된 사업장은 해운대구 우동1구역이다. 지난해 3월 DL이앤씨를 선정하면서 ‘아크로 원하이드’를 약속받았다. 이어 지난 3월 대구 수성1지구 ‘아크로 르비아체’, 4월 광주 신가동 재개발 등이 뒤를 이었다.

서초 푸르지오 써밋 [사진=대우건설]
서초 푸르지오 써밋 [사진=대우건설]

대우건설은 자사의 대표 브랜드 ‘푸르지오’를 유지하면서 브랜드를 고급화해 지난 2014년 ‘푸르지오 써밋’을 발표했다. 첫 준공 단지는 서울 서초구 ‘서초 푸르지오 써밋’으로 2017년 입주했다.

대우건설은 서울권 외에는 경기 과천시, 부산광역시에 ‘써밋’을 적용했다. 먼저 ‘과천 푸르지오 써밋’은 과천주공1단지를 재건축해 지난 2020년 준공을 마쳤다. 이어 지난해 3월 비수도권 최초로 부산 남구 대연4구역에 ‘더 비치 푸르지오 써밋’을 적용키로 했다.

압도적인 수주 1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건설은 지난 2015년 ‘디 에이치’를 론칭했다. 디에이치는 ‘단 하나’를 의미하는 ‘THE’와 ‘High-end, Heritage, High society, Hyundai’등을 의미하는 'H'를 결합해 만들어졌다.

디에이치아너힐즈 외관 전경 [사진=개포주공3단지 재건축조합 제공]
디에이치아너힐즈 외관 전경 [사진=개포주공3단지 재건축조합 제공]

최초 ‘디 에이치’ 단지는 서울 강남 ‘디에이치 아너힐즈’다.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아파트로, 지난 2019년 입주했다. 지방 최초 ‘디 에이치’ 단지는 올해 2월에 나왔다. 대전 재개발 대어로 꼽히는 유성구 장대B구역에 ‘디 에이치 비아트’가 제안됐다. 이어 4월 경기 과천시 과천주공8·9단지를 재건축하는 ‘디 에이치 르블리스’, 5월 광주 서구 광천동 재개발 ‘디 에이치 루체도르’ 등이 확정됐다.

‘디 에이치’는 현대건설의 역대급 수주 레이스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실제로 올해 수주액 6조9,544억원의 59.1%에 달하는 4조1,105억원을 ‘디 에이치’로 수주했다. 올해 적용 사업지는 △서울 용산구 이촌 강촌아파트 리모델링 4,743억원 △대전 유성구 장대B구역 재개발 8,872억원 △경기 과천시 주공8·9단지 재건축 9,830억원 △광주 서구 광천동 재개발 1조7,660억원 등이다.

르엘 신반포 조감도 수정[사진=롯데건설 제공]
르엘 신반포 조감도 수정[사진=롯데건설 제공]

롯데건설의 경우 지난 2019년 ‘Limited Edition’의 ‘LE’와 롯데의 상징으로 쓰이는 접미사 ‘EL’을 결합해 ‘르엘’을 내놨다. 첫 적용 사업지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재건축 단지로 각각 구마을2지구, 반포우성아파트를 재건축한 ‘르엘 대치’, ‘반포 르엘’이다. 롯데건설은 ‘르엘’을 강남3구와 용산 이촌동 등에 선보이는 중으로 아직 지방 적용사례는 없다.

 

▲재개발·재건축 넘어 리모델링, 소규모정비사업 적용 사례도

재개발·재건축 등 주로 정비사업에 적용하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최근에는 리모델링, 소규모정비사업 등에도 등장하고 있다.

디 에이치 르헤븐 조감도 [조감도=현대건설 제공]
디 에이치 르헤븐 조감도 [조감도=현대건설 제공]

먼저 리모델링의 경우 현대건설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아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수주하면서 ‘디 에이치’ 적용을 약속했다. ‘디 에이치’의 리모델링 적용 최초 사례로, 단지명은 ‘디 에이치 르헤븐’으로 정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31일 서초구 잠원 롯데캐슬갤럭시 1차 리모델링(디 에이치 라플루스), 올해 2월 용산구 이촌강촌아파트 리모델링(디 에이치 아베뉴 이촌)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촌현대아파트 조감도=롯데건설 제공]
[이촌현대아파트 조감도=롯데건설 제공]

롯데건설은 리모델링 사업장 2곳에서 ‘르엘’을 선보였다. 지난 2020년 10월 용산구 이촌현대아파트 리모델링(르엘 이촌), 2022년 1월 강남구 청담 신동아아파트 리모델링(르엘 라필투스) 등이다.

써밋 비셀리움 [조감도=대우건설 제공]
써밋 비셀리움 [조감도=대우건설 제공]

대우건설도 이달 2일 리모델링 사업에서 처음으로 ‘써밋’ 브랜드를 적용했다. 서울 송파구 거여5단지아파트 리모델링에 ‘써밋 비셀리움’을 제안하면서 시공자로 선정됐다.

이례적으로 소규모정비사업에서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한 사례가 있다. 현대건설이 3곳, 대우건설이 1곳이다.

대치선경3차 가로주택 조감도 [사진=현대건설]
대치선경3차 가로주택 조감도 [사진=현대건설]

현대건설은 지난해 5월 한남시범아파트 소규모재건축(디에이치 메종 한남), 12월 대치선경3차아파트 가로주택(디에이치 대치역), 대치비취타운 가로주택(디에이치 삼성역)을 연달아 수주했다. 사업 규모는 크지 않아도 우수한 입지조건에 맞춰 고급 브랜드를 적용했다는 평가다.

서초 써밋 엘리제 [투시도=대우건설 제공]
서초 써밋 엘리제 [투시도=대우건설 제공]

대우건설도 강남권 소규모재건축사업에서 최초로 ‘써밋’을 선보였다. 서울 강남구 서초아남아파트 소규모재건축조합은 지난 11일 시공자 선정 총회를 열고 대우건설을 선정했다. 이 단지는 ‘서초 써밋 엘리제’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그렇게 좋으면 다 하지…’ 하이엔드 브랜드의 리스크

시공자들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던 하이엔드 브랜드에 순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원하는 조합과 건설사 간에 이견이 발생해 시공자 해지·교체 수순을 밟는 사업장도 있다. 또 기존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단지들이 점차 관대해지는 적용 기준에 불만을 터트리기도 한다.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재개발사업 일대 [사진=한국주택경제신문DB]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재개발사업 일대 [사진=한국주택경제신문DB]

실제로 서울 흑석9구역은 기존 시공자였던 롯데건설에게 ‘르엘’ 적용을 요구했지만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시공자 해지에 이르렀다. 또 광주 서구 광천동 재개발조합도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문제로 DL이앤씨 등으로 구성된 프리미엄 사업단과 결별했다.

건설사들이 수주전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허들을 낮추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당초 하이엔드 브랜드는 강남, 한강변 등 부촌지역 위주로 공급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많은 사업장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를 요구하고 실제로 관대하게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기존 하이엔드 브랜드 입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더불어 ‘e편한세상’, ‘힐스테이트’, ‘롯데캐슬’, ‘푸르지오’ 등의 일반 브랜드들의 경쟁력 감소도 문제다. 이제 서울권 뿐 아니라 지방 주요 사업지에서 일반 브랜드를 제안하는 경우가 줄어들면서 해당 브랜드들의 존재 이유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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