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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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이사비 7,000만원 제공” “이주촉진비 세대당 3,000만원 지급” “재건축부담금 발생 시 전액 대납”…

연말부터 건설사가 수주 과정에서 이 같은 불법성 제안을 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다.

시공권 경쟁이 치열한 일부 현장에서 뇌물이나 매표 성격의 제안을 약속하는 행태가 발생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사비나 이주비, 이주촉진비 등 시공과 관련이 없는 사항에 대해 일체의 제안을 할 수 없도록 법제화한 것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임에도 위반 시 처벌수위가 낮아 실제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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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으로는 약하다… ‘시공 무관한 제안 금지’ 법령으로 명시

건설사의 시공과 무관한 제안을 금지하는 내용은 이미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포함된 내용이다. 현행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따르면 조합은 건설업자에게 이사비나 이주비, 이주촉진비, 재건축부담금 등 시공과 관련이 없는 사항을 요청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건설업자도 마찬가지로 조합에 시공과 무관한 금전·재산상 이익을 제안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계약업무 처리기준의 경우 직접적인 벌칙규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법을 위반하는 경우에 대한 처벌 규정은 마련되어 있지만, 계약업무 처리기준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의 한 재개발구역에서는 과당경쟁이 심해지자 국토부와 서울시가 검찰에 건설사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입찰 제안서 등의 내용만으로는 도시정비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에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는 계약업무 처리기준의 규정을 법령에 정했다. 제안 금지 사항에 대해서도 이사비와 이주비, 이주촉진비, 재건축부담금 대납 등을 명시하는 동시에 대통령령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정하도록 했다. 더불어 계약 체결과 관련해 시공과 관련이 없는 사항을 제안한 사람에 대해서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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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비·개발이익보증금·인테리어 비용·민원처리비 등 명칭만 바뀐 금품 제공 방법

그동안 건설사들은 시공과 무관한 제안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편법을 동원해 재산상 이익을 약속해왔다. 대표적인 약속이 바로 현금 지급이다. 2개 이상의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해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다양한 명목으로 많게는 수천만원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서울 강남권의 한 재건축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가 세대당 7,000만원에 달하는 이사비용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약속해 논란이 일었다. 전체 세대로 보면 1,80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토교통부가 나서서 과도한 이사비 지급에 대한 시정 조치를 명령하기도 했다. 물론 선정 이후에는 불법 등을 이유로 실제 이사비는 제공되지 않았다.

서울의 한 재개발 구역에서는 개발이익보증금이란 제안이 등장했다. 해당 건설사는 시공권 수주전 과정에서 ‘확정이익 보장제’를 통해 조합원 1인당 평균 3억원의 추가 개발이익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 확정이익 보장제를 보증하기 위해 관리처분인가 시 3,000만원의 보증금을 현금으로 선지급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부산에서는 민원처리비라는 명목으로 현금을 제공하겠다는 건설사도 있었다. 조합원 세대당 3,000만원을 선정 후 일주일 내에 지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건설사는 불법성 등의 이유로 아직까지 실제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인테리어 비용이나 재건축부담금 대납, 사업추진비 등의 명칭으로 불법성 제안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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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자 홍보비 수십억원 사용하는데 과태료는 1,000만원 불과… 규제 실효성은 의문

매표나 뇌물성 제안이 늘어나면서 시공과 무관한 제안을 금지하는 규정을 직접 명시한 개정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벌칙 수위가 낮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도시정비법상 추진위원이나 조합임원의 선임, 계약 체결과 관련해 금품·향응 등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을 승낙하는 행위는 벌칙 규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심지어 재산상 이익 제공을 약속하기만 해도 곧바로 처벌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주비 등을 제안하는 경우에 벌칙은 과태료 1,000만원이 전부다. 징역형은 적용되지도 않고 과태료만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공권 수주 경쟁이 치열한 경우 건설사가 많게는 수백억원의 홍보비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과태료만으로 과열경쟁을 막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과태료 1,000만원을 납부하면 시공과 무관한 제안을 허용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시행하는 사안에 대해 법을 어기면서까지 수주 활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면서도 “그렇다고 하더라도 벌칙이 과태료 1,000만원에 불과한 것은 처벌수위가 너무 약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주 경쟁이 치열한 현장이라면 과태료를 감수하더라도 이사비 등을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공 제안 금지 사항을 어길 경우에는 입찰 자격을 박탈하는 등의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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