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이 시공자를 선정하고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준공까지 4~5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그 사이의 물가인상을 얼마나 반영할지는 큰 숙제다. 조합원들로서는 증액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계약한 금액대로 공사를 진행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겠지만, 한 번 더 생각하면 공사비를 묶어두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조합이 물가인상을 전혀 반영해주지 않는다면 시공자가 물가인상으로 인한 비용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시공권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고 자재의 품질·저하로 원하는 수준의 고급 아파트를 짓는 것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가인상에 따라 증액된 공사비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일반분양가 상승으로 인해 늘어난 분양수입금으로 어느 정도는 충당이 가능하다. 물가인상을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므로 조합과 시공자는 ‘실 착공일까지는 물가인상을 반영하여 공사비를 조정하되, 실 착공일 이후에는 물가인상에 따른 공사비 조정은 하지 않는다’는 특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최근 철근, 콘크리트 등 건설자재 가격이 비정상적 수준으로 폭등하면서 건설사를 중심으로 이러한 물가인상 배제특약이 시공자에게 현저히 불리한 불공정 조항으로 무효라는 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근거는 건설산업기본법 제2조제5항이 ‘공사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해당 부분은 효력이 없다’고 정하고,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의 하나로서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는 것.

대한건설협회는 국토교통부에 물가인상 배제특약이 유효한지를 질의했고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위 조항을 근거삼아 ‘계약서 상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의 조정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을 인정하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가 없다면 그 부분에 한정하여 도급계약의 내용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공식회신을 함으로써 건설사의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건설산업기본법은 건설산업에 관한 일반법으로서 공공공사 뿐만 아니라 민간공사에도 적용되므로 조합 역시 위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제로 몇몇 시공자는 이미 공사를 시작하였음에도, 위 국토교통부의 질의회신을 근거로 물가인상을 반영하지 않을 상당한 이유를 제시하라거나 만약 그러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 물가인상을 반영해 공사비를 올려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사적자치와 계약자유의 원칙상 물가인상 배제특약은 일응 유효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계약의 무효사유는 그 무효를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하므로, 시공자가 위 특약이 시공자에게 현저하게 불리하여 불공정하다는 점을 입증하여 법원으로부터 무효 판결을 받아오지 않는 한 조합은 본래의 계약조건에 따른 공사비를 지급하면 충분하다.

대법원 역시 물가인상 배제특약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확인하였고 이 중에는 2007~8년경 미국의 부동산 버블 붕괴와 그에 따른 모기지론의 부실화로 인한 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되어 세계적 수준의 경제적 혼란이 발생한 상황 속에서도 ‘물가변동(환율변동 등)이 있더라도 계약금액을 조정할 수 없다’는 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한 사례가 있는 점, 시공자와 조합의 계약상 지위가 서로 대등한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시공자가 현재의 경제상황을 근거로 물가인상 배제특약이 무효라는 판단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조합은 물가인상 배제특약의 유효성과 무관하게, 총회 의결을 거쳐 실 착공일 이후 물가인상분 전부 또는 일부를 반영하는 것으로 계약조건을 수정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좋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서는 시공자에게 적절한 이권이 보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조합과 시공자가 법적 다툼없이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의 02-584-2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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