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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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시기를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기는 방안이 무산됐다.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심의에서 보류 결정이 내려지면서 조례개정안은 자동 폐기될 예정이다.

사업 초기단계에서 사업비를 조달하는 것이 어렵다는 업계의 요구가 반영된 조례안이지만, 시의회 상임위가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180곳 이상의 현장들은 당분간 사업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표=홍영주 기자]
[표=홍영주 기자]

▲공공관리제도 도입 후 시공자 선정시기 미뤄져… 융자제도 실효성 낮고 사업기간·비용 오히려 늘어

서울시 내 정비사업의 시공자 선정시기가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변경된 것은 지난 2010년 10월 공공관리제도(현 공공지원제도)가 도입되면서다. 당시 시는 재건축·재개발의 비리가 시공자나 정비업체 등의 협력업체 선정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진단하고, 시공자 선정시기를 뒤로 미뤘다. 초기 사업비를 시가 융자하는 대신 시공자를 최대한 늦게 선정하도록 한 셈이다.

더불어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시공자를 선정할 경우 공사비 증액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설계안을 기준으로 시공자를 선정하는데다, 본계약을 체결하는 관리처분계획까지의 기간이 짧은 만큼 공사비 증액 요인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의 예산으로 융자금을 지원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데다, 융자 문턱이 높아 실질적인 지원 효과는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추진위원회 및 조합의 지원금액은 신청금액의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추진위와 조합이 5,720억원의 자금지원을 신청했지만, 실지원액은 865억원에 머무른 것이다. 정비구역당 지원액이 평균 2억5,000만원 수준이다.

시공자의 공사비 절감 효과도 미미하긴 마찬가지였다. 각 건설사는 자사의 브랜드를 적용하는 만큼 특화설계나 특허기술 등의 적용이 필수적이다. 이렇다보니 조합에서는 시공자 선정 이후 설계 변경이 사실상 필수였다.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인상도 기존과 다름없는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지난 2014년 주택산업연구원이 분석한 ‘서울시 공공관리제도의 영향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시공자를 선정한 공공관리 적용 16곳의 3.3㎡당 공사비는 평균 430만원이었던 반면 공공관리 미적용 21곳의 공사비는 406만원으로 오히려 더 낮았다. 사업기간도 조합이 시공자를 선정한 이후 사업시행인가까지 30개월이 소요된 반면 공공관리 적용구역은 조합설립 후 사업시행인가, 시공자 선정까지 36개월로 되레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표=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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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검증 등 제도 보완 이뤄져… 이성배·김종무 “시공자 선정시기 앞당기자”

시공자 선정시기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시공자 선정시기를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다시 앞당기는 방안이 추진됐다. 초기 사업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구역들이 늘어나면서 시공자 선정시기를 조기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개정되면서 공사비 검증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만큼 시공자 선정을 늦출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성배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정비지원계획(신속통합기획)을 반영해 정비계획을 수립한 정비구역은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자 선정이 가능한 도시정비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제출했다.

이 의원은 “공공지원제도 도입 이후 조합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정비사업 초기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왔다”며 “정비지원계획을 반영해 정비계획을 수립한 정비구역은 조합설립인가 이후에 시공자 선정이 가능하도록 해 주택공급 등 부동산 시장안정에 기여하기 위해 조례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김종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합원의 동의를 받아 시공자 선정시기를 앞당기는 내용을 담은 개정조례안을 발의했다. 지난 3월 제출된 개정조례안에 따르면 정비계획이 수립된 조합은 조합원 2/3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시공자 선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신속통합기획 적용 구역이 아니더라도 조합원 동의만 있으면 시공자를 조기에 선정할 수 있는 것이다.

김 의원은 “서울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공자 선정을 사업시행인가 이후로 규정해 시공자 선정 지연으로 인한 추진 과정의 비효율성, 조합의 초기 사업비 조달 등의 문제가 누적되어왔다”며 “공공지원제도 도입 후 10여년이 지나 시공자 선정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비리와 과도한 공사비 인상에 대한 방지책이 마련된 만큼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등 추가 논의 필요해 보류… 181곳 대상지 사업추진 발목 우려

시의회에 시공자 선정시기를 조기화하는 개정안이 2건이나 제출됐지만, 상임위에서는 당장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당장 내달 1일부터 새로운 시의회가 구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당 개정조례안은 폐기 수순에 들어가는 셈이다.

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시공자 선정시기를 조합설립인가 후로 앞당길 경우 설계도서가 없어 공사비 내역에 대한 타당성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공사비의 무분별한 증액과 과열된 수주전으로 인한 비리 발생을 방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공공지원 시공자 선정기준에 반영할 내용에 대한 검토기간이 필요하고, 설계도서 작성에 필요한 구체적인 자료, 공사비 적정성 검토, 설계변경 최소화 방안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시공자 선정 총회의 경우 직접 출석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2/3 이상 조합원 동의 시에도 조합원이 직접 출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서울시 내 정비사업은 당분간 현행대로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시공자를 선정하는 방안이 지속될 예정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3월 31일 기준 사업시행인가 이전 단계의 초기 사업장은 총 181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는 △안전진단 단계 40곳 △정비계획 수립단계 38곳 △정비구역 지정단계 9곳 △추진위원회 승인 단계 17곳 △조합설립인가 단계 77곳 등이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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