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도시정비법이 개정되면서 서면결의에 대한 본인확인의무가 신설됐다. 도시정비법 제45조제6항은 ‘조합은 서면의결권을 행사하는 자가 본인인지를 확인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같은 조 제9항에는 본인확인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을 정관으로 정하도록 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합이 어떤 방식으로 본인확인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만약 조합이 본인확인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그 서면결의는 무효인가 하는 것. 특히 본인확인방법에 관한 사항을 아직 정관에 반영하지 못한 경우가 문제된다.

총회결의 무효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서면결의서에 신분증 사본이나 인감증명서 등을 첨부한 경우에만 신분이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서면결의서가 무효라는 논리를 펼친다.

게다가 최근 ‘서면결의서에는 신분증 사본 등 본인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첨부되어 있지 아니하고 달리 조합측이 이들의 본인 여부를 확인하였다고 볼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서면결의서를 무효로 본 하급심 결정이 나오면서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이들의 주장처럼 신분증 사본이나 인감증명서를 첨부한 경우에만 본인확인의무를 다한 것으로 봐야 할까.

도시정비법이 조합설립동의에 신분증명서의 첨부를 명시적으로 요구함에 반해, 서면결의서와 관련해서는 단지 본인임을 확인하도록 규정하면서, 구체적인 본인확인 방법에 대해서는 정관에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법이 조합설립동의와 같이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지 않음에도 신분증 사본이나 인감증명서를 첨부한 경우에만 본인확인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법문을 뛰어넘는 자의적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위 하급심 판례도 반드시 서면결의서에 신분증 사본 등을 첨부하는 방법으로 본인임을 확인해야만 한다는 취지는 아니다.

따라서, 도시정비법과 정관에서 본인확인의 방법에 대해 특정하고 있지 않은 이상, 서면의결권을 행사하는 조합원이 본인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만 하면 된다.

예컨대, 서면결의서 회송용 봉투에 본인확인란을 만들어 조합원이 서명 또는 날인하게 한다든지, 서면결의서 상단에 본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인적사항을 직접 기재하게 한다든지, 등기번호 조회를 통해 발신자를 확인할 수 있는 등기우편으로 서면결의서를 제출하게 하는 등의 방법이면 충분하다.

그렇다면 만약 조합에서 그런 정도의 본인확인도 하지 않은 경우, 그 서면결의서는 무효로 보아야 할까.

위 하급심 결정에 따르면, 본인확인을 반드시 신분증 사본 등을 첨부하는 방법으로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정비법이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본인확인을 하도록 개정된 이상 본인확인방법이 정관에 반영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본인확인을 해야 하고, 본인여부를 확인 하지 않았다면 서면결의서는 무효라는 것이다.

조합에 본인확인을 하도록 한 이유는 조합원들의 의결권 행사를 보장하고 조합의 의사결정이 왜곡되지 않게 하려는 취지이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조합원들의 진정한 의사로 작성된 서면결의서를 무효화하는 근거가 된다면, 조합의 의무 위반의 불이익을 조합원들에게 전가시키는 꼴이 된다. 심지어 조합 집행부가 조합에 비판적인 조합원들에 대해서 선별적으로 본인확인을 하지 않아 그 의결권을 무효로 만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서면결의서 위·변조를 다투는 소모적인 분쟁과 이로 인한 사업지연을 방지하고자 하는 입법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이를 근거로 서면결의를 무효로 보는 결론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

판례의 추이를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향후 충분한 논의를 거쳐 논리가 재정립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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