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재개발현장. 조합은 이사회 의결로 ‘우리 조합은 조합원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하드카피로만 정보공개를 하겠으며 복사비용은 장당 250원’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소식지를 통해 이를 조합원들에게 알려왔다.

조합원 한 명이 이런저런 자료를 요청했는데 그 양이 무려 10,000장에 달해 복사비용이 약 260만원 예상됐고, 조합은 청구인에게 전화를 걸어 복사비용이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대부분 자료는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으니 꼭 필요한 자료만 복사해가는 게 서로 좋지 않겠냐고 물었다.

청구인은 조합이 정보공개를 거부하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부산시 도시정비조례가 ‘복사비용은 부산시 수수료징수조례가 정한 수수료를 준용한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조합은 이를 따라야 하고 특히 조합이 전자파일로는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하면서 조례보다 비싼 복사비용을 받는 것은 조합원들의 정보공개청구를 제한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부산시 수수료징수조례는 A4문서의 복사비용을 250원(1장 초과마다 50원)으로 정하고 있었는데, 청구인은 위 기준에 따라 계산한 복사비용을 조합계좌로 입금해버린 후 장당 250원으로 계산한 차액을 납부하지 않으면 자료를 내어줄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던 조합장을 도시정비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조합장은 처벌을 받았을까. 수사기관은 먼저 조합이 부산시 수수료징수조례보다 비싼 복사비용을 정하여 운영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조합은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94조제2항제5호는 ‘조합이 열람·복사방법, 등사에 필요한 비용 등을 정하여 조합원들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정함으로써 조합에게 정보공개방법, 복사비용 등에 관한 결정 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부산시 도시정비조례 제68조제4항은 부산시 수수료징수조례를 ‘적용’한 것이 아니라 ‘준용’하였는데 ‘준용’이란 특정조문을 그와 성질이 유사한 규율대상에 대해 그 성질에 따라 수정하여 적용하는 것이므로 조합이 복사비용을 장당 250원으로 정하여 운영한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합은 같은 논리로 부산시 도시정비과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정비사업 시행에 관한 서류와 관련 자료에 대한 복사비용은 조합정관 등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조합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받아냈고, 수사기관은 부산시의 분명한 입장을 결정적인 근거로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하드카피로만 정보를 제공한다는 조합 운영원칙에 대해서는 “전자파일로 정보를 공개할 경우 무분별한 가공, 재배포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들어 업무규정으로 전자파일의 방식으로 공개를 하지 않겠다고 정한 것은 일응 수긍할만하고 달리 법령위반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고도 보았다.

수사기관은 다음으로 도시정비법 제124조제5항은 조합이 ‘실비’의 범위에서 정보공개청구인에게 복사비용을 부담시킬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250원은 너무 비싸다는 점에 주목했다. 조합은 원가자료로 복사기 리스료, 종이값, 토너값, 주민등록번호 등을 지우는데 드는 인건비를 제시했다. 수사기관은 100원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거나 이사회에서 복사비용을 정할 때 실비내역을 검증한 적은 없다며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수사를 이어갔지만 결국 “250원이 명백히 실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 조합장에게 정보공개를 거부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아 불기소로 사건을 종결했다.

시·도마다 도시정비조례의 내용이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조합이 비용 적정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를 갖추고 이사회나 대의원회 의결을 거쳐 복사비용을 정한다면, 조례보다 다소 높은 복사비용을 받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한국주택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