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와 개발사업은 역(逆)상관관계라는 것이 일반의 시각이다. 개발을 우선시할 경우 문화재 훼손이 우려되고, 문화재 보호를 우선하면 개발사업의 이익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 인근 개발로 인해 이슈가 된 성남 대장동이나 인천 검단신도시가 대표적인 사례다.

주택건설사업의 일종인 재개발·재건축도 마찬가지다. 정비구역 내에 문화재가 발견될 경우 사업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10여개의 문화재와 공존을 택한 재개발구역이 있다. 심지어 구역 한복판에 이동이 불가능한 문화재가 위치해 있지만, 오히려 문화·역사 친화적 단지로 재개발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바로 부산 동래구 복산1구역이 그 주인공이다. 문화재와 재개발이라는 모순과도 같은 문제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복산1구역 재개발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이일호 조합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일호 조합장 |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사진=심민규 기자]
이일호 조합장 |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사진=심민규 기자]

▲복산1구역은 문화재를 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구역 인근에 워낙 많은 문화재가 위치해있기 때문이다. 현재 구역 인근의 문화재 현황을 설명해 달라

복산1구역 인근에는 국가지정문화재 1개소와 시지정문화재 14개소가 있다. 복천동고분군을 비롯해 충렬사, 법륜사, 동래읍성 등이 인접해 있는데, 고분군의 경우 구역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개발의 제약과 사유재산권 제한을 감수하면서 수십 년 동안 불편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문화재가 다수 존재한다는 것은 예로부터 사람이 거주하던 곳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판단에서는 우리 구역이 전국에서 문화재가 가장 많은 곳이 아닌가 생각한다.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현재 모습 [사진=조합 제공]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현재 모습 [사진=조합 제공]

▲문화재 관련 심의를 통과하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됐다. 그동안의 심의 과정과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무엇인지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무려 20차례가 넘는 문화재현상변경 심의 절차를 진행했다. 문제는 심의 과정에서 재개발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복산1구역의 문화재 보호 방안과 재개발 방향 등에 대한 구체적인 부분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채 정치권의 이슈화와 언론의 편파·왜곡 보도로 인해 심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또 시민단체 활동으로 심의위원들도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행정청 역시 적극적인 행정을 펼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로 인해 무려 약 7년만인 지난 2월 말에서야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골격을 완성했다.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현재 모습 [사진=심민규 기자]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현재 모습 [사진=심민규 기자]

▲복산1구역은 주변에 많은 문화재가 있어 어려운 사업추진이 예상된 곳이다. 그럼에도 재개발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복산1구역은 문화재 보호구역에 인접한 관계로 오랫동안 주민들의 사유재산권이 제한된 곳이다. 이에 따라 구역 내에는 무려 300채가 넘는 폐·공가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복산동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는 이유는 피폐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주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삶의 기본이 되는 도로나 상하수도, 도시가스 등의 기반시설조차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다. 특히 칠산동의 경우 지반 슬라이딩 현상으로 인해 건축물이 무너지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매년 주택 붕괴와 인명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또 구역 내에는 소방도로는커녕 사람의 통행마저도 불편한 골목길이 많아 화재가 발생하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만큼 재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다.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경관심의 통과 조감도 [사진=조합 제공]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경관심의 통과 조감도 [사진=조합 제공]

▲최근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는데, 정비계획을 수립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은

이번 심의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했던 부분은 주민과 문화유산이 상생하고, 공존할 수 있는 개발계획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는 재개발을 추진하는 복산1구역 주민들을 ‘문화재 파괴주의자’로 매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각과 신념은 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다. 주민들은 고분군을 선조의 묘로 생각한다. 누구보다 고분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주민이다. 단순히 개발을 위해, 사업성을 높이기 위해 고분군을 파괴하는 행위는 주민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합에서는 정비계획에 주민들의 생각과 의지를 담았다. 주거환경을 개선하면서도 문화재를 더욱 빛낼 수 있는 방안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무조건적인 사업성보다는 문화·역사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100년 후의 미래를 빛낼 ‘부산 대표 문화재개발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특화설계 조감도 [사진=조합 제공]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특화설계 조감도 [사진=조합 제공]

▲인근에 가야 고분군 등이 위치해 있는 만큼 향후 공사 과정에서 문화재가 발굴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에서는 지하에 묻혀있는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재개발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문화재 보호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문화재의 본질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문화재청의 표현을 빌리자면 문화재는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즉 보존을 전제로 문화재의 가치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복산1구역은 녹지나 나대지 등을 개발한 성남 대장동이나 인천 검단신도시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미 사람들이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오랜 시간 사람이 살아온 곳이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지하에 묻혀있는 문화재는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일부 문화재 보호론자들의 주장대로 건물 밑에 묻혀있는 문화재를 그대로 두는 것은 방치일 뿐이다. 오히려 재개발을 통해 문화재를 발굴해 관리·보존하는 것이 문화재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특화설계 조감도 [사진=조합 제공]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특화설계 조감도 [사진=조합 제공]

▲향후 사업계획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으신지

연내 교통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 등의 각종 평가를 모두 통과해 사업시행인가를 접수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 구역은 부산에서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교통과 교육, 문화, 친환경적인 환경까지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친 조합원과의 소통과 기초수요조사를 바탕으로 특화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재개발에 대한 패러다임 혁신을 약속한 GS건설의 협조로 원만하게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고의 입지조건에 걸맞은 복산1구역에 최고의 명품주거단지를 건설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일호 조합장 |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사진=심민규 기자]
이일호 조합장 |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 [사진=심민규 기자]

▲끝으로 조합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난 2013년 이래로 조합은 ‘인의(仁義)와 사리(事理)로써 재개발을 완성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업무에 매진했다. 재개발을 추진함에 있어 매사 사리대로 진행하되 인의라는 대의로 사업을 추진해왔다. 인(仁)은 재개발이 실현해야 할 목표이며, 의(義)는 재개발의 방향이다. 인의로써 재개발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길 염원하고 있다. 재개발은 주거환경개선을 통해 조합원의 삶의 질을 고양하고, 정체성을 혁신하는 혁명이라 생각한다. 조합은 복산1구역의 실체를 규명하고 본질을 궁구해 반드시 거룩한 재개발을 완수할 것이다. 그동안 조합을 믿고 기다려주신 조합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우리 재개발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앞으로 패스트트랙, 멀티트랙방식을 통해 지혜롭게 운용해 재개발의 대장정을 훌륭하게 마무리해 보답하겠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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