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성의 법칙은 간단하다. 원하는 사람이 많은데 물건이 적으면 값이 올라가는 것이다. 세상 속 수많은 재화는 모두 ‘희소성’이라는 옷을 입을 수 있다. 이것은 ‘의·식·주’ 중 하나인 주거 문제도 동일하다. 더 이상 집이라는 공간이 주거만을 담당하지 않고 상품성도 갖는 시대가 되면서, 아파트 브랜드가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다. 이에 건설사들은 너도나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론칭했고, 이는 일장일단을 낳았다. 새 브랜드를 론칭한 건설사들은 조합원들에게 어필하기 쉬웠고 경쟁력이 커져 영업이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강남 등 부촌지역 위주로 공급하려던 하이엔드 브랜드는 치열한 수주전쟁 속 시나브로 가외로 퍼져갔다. 이에 수도권, 지방 등 조합들도 너도나도 최고의 브랜드를 요구했고, 이는 시공자 해제·교체라는 결과를 낳았다.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아파트 하이엔드 브랜드, 어떤 것들이 있나? 첫 적용 단지는 어디?

10대 건설사 중 4곳이 하이엔드 브랜드를 론칭하며 고급화 전략을 세웠다. DL이앤씨의 ‘아크로’, 현대건설의 ‘디에이치’,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써밋’, 롯데건설의 ‘르엘’이 대표적이다.

DL이앤씨는 지난 1999년부터 주상복합과 오피스텔에 적용하던 아크로를 하이엔드 브랜드로 고급화시켰다. 아크로의 첫 적용단지는 ‘아크로힐스논현’으로, 지난 2014년 입주했다.

현대건설의 디에이치는 ‘단 하나’를 의미하는 ‘THE'와 ’High-end, Heritage, High society, Hyundai'등을 의미하는 'H'를 결합해 만들어졌다. 첫 디에이치 단지는 ‘디에이치아너힐즈’로, 지난 2019년 준공됐다.

대우건설의 푸르지오 써밋은 고급화 전략은 취하되, 자사의 대표 브랜드 푸르지오는 계속 유지하는 방식을 썼다. 지난 2014년 ‘용산 푸르지오 써밋’에 첫 적용하며 브랜드를 알렸다.

롯데건설은 지난 2019년 'Limited Edition'의 ‘LE'와 롯데의 상징으로 쓰이는 접미사 ’EL'을 결합해 ‘르엘’을 론칭했다. 지난 2019년 대치동의 재건축 단지에 첫 적용했으며 각각 ‘르엘 신반포 센트럴’과 ‘르엘 대치’다.

■ 시공능력평가 10위 건설사 아파트 브랜드 [표=홍영주 기자]
■ 시공능력평가 10위 건설사 아파트 브랜드 [표=홍영주 기자]

▲‘우리는 왜 안해주나?’ 강경한 조합과 난감한 건설사… 오히려 하이엔드 브랜드 없는 게 맘 편하다?

건설사들의 수주 곳간에 ‘한몫’하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역으로 발목을 잡기도 한다. 이러한 고충은 강남, 용산 등 서울 주요도심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하이엔드 브랜드를 흑석 등 준강남 지역부터 서울 외곽, 수도권, 나아가 지방까지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건설사들이 격전 예상지에 점점 관대하게 하이엔드 브랜드를 제안하는 사례가 생기자 너도나도 하이엔드 브랜드를 요구한 것이다. 실제로 흑석9구역은 롯데건설의 르엘 적용을 요구했지만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시공자를 현대건설로 교체했다. 광주 서구 광천동 재개발조합도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문제로 DL이앤씨 등으로 구성된 프리미엄 사업단과 결별했다.

하이엔드 브랜드가 점차 차별화·경쟁력을 잃자 ‘더 이상 High-end 아닌 end’라는 조소도 생겼다. 건설사들이 수주전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하이엔드 브랜드를 남발하자 기존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단지들에서 불만이 터진 것이다.

기존 시공 브랜드도 사실상 ‘찬밥신세’다. 정비 사업 수주전에서 ‘e편한세상’, ‘롯데캐슬’, ‘푸르지오’ 등 일반 브랜드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 하이엔드 브랜드를 론칭하지 않은 건설사들은 마음이 편한 상황이다. 8년 연속 시공능력평가 1위인 삼성물산의 경우 따로 하이엔드 브랜드 없이 ‘래미안’을 단독으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 연속 아파트 브랜드 만족도 1위, 7년 연속 미분양 제로 등의 기록을 낳았다.

지난해 수주2위를 기록한 GS건설도 하이엔드 브랜드 없이 대표 브랜드인 ‘자이’를 사용해 5조 클럽에 가입하는 성과를 냈다. 자이는 지난해 말 부동산R114가 진행한 ‘2021년 베스트 아파트 브랜드’ 조사 결과 1위를 차지하는 등 선호도가 높다.

이호준 기자 leejr@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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