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구역이 지정되고 나면, 총대를 메고 조합을 설립하려는 토지등소유자는 뜻을 같이 하는 몇몇을 모아 추진위원회를 만든다. 정비사업의 형태에 따라 ‘추진위원회’가 법정단체가 아니어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조합설립을 위한 구심점을 만들고 대표성을 선점하는 의미로 추진위원회를 만든다. 이러한 단체는 이름과 관계없이 임의단체에 불과하므로 구성 시 관할청의 승인처분이 필요하지 않고 위원장·위원·감사 등의 조직이나 운영규정 등을 갖출 필요가 없다.

추진위원회는 구역 내 토지등소유자로부터 법정동의율 이상의 조합설립동의서를 받은 후,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정관확정, 조합임원 선출 등을 결의하고 관할청에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함으로써 소임을 다하게 되는데, 이 때 추진위원회 내부 갈등이 발생하여 추진위원 중 일부가 자신이 보관하고 있는 조합설립동의서를 내어줄 수 없다고 버티고 추진위원회는 창립총회를 개최하고도 인가를 신청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갈등을 봉합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추진위원의 요구를 수용하고 인질로 잡힌 동의서를 받아오거나 해당 동의서는 없는 셈 치고 새로 동의서를 받는 것이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법적 강제수단을 통해 동의서를 받아오는 방법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조합설립동의서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문서의 소유권은 일차적으로 작성자에게 있지만 작성자가 이를 타인에게 접수한 경우 문서의 소유권은 작성자의 손을 떠나 접수자에게 이전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이다. 추진위원회가 법정단체인 경우 접수자가 추진위원회라는 것은 비교적 명확해보인다. 법령상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은 추진위원회에게 있으며, 추진위원은 비법인사단인 추진위원회의 기관이므로 추진위원이 직접 조합설립동의서 수령행위를 했더라도 이는 추진위원회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추진위원회가 조직과 운영규정을 갖추지 못한 임의단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소규모주택정비법이 적용되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예로 들어보면, 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토지등소유자는 반드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개인 자격에서도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할 수 있다.

추진위원회라는 명칭의 단체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 단체는 권리능력이 없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추진위원이 해당 단체의 기관으로서 행위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 경우에는 실제 조합설립동의서를 수령한 추진위원을 접수자로 보아 해당 추진위원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만약 여러 추진위원이 받아온 조합설립동의서가 함께 보관되고 있고 사후적으로 누가 받아온 것인지를 분명하게 확인하기가 어렵다면, 점유물에 대한 권리추정법리에 따라 조합설립동의서를 보관하고 있는 자를 소유자로 추정하는 것이 옳다. 추진위원에게 소유권이 있거나 소유권이 있다고 추정되는 경우 추진위원회는 법적 강제수단은 단념하고 적극적으로 화해를 시도하거나 새로 동의서를 걷는 것이 현명하다.

추진위원회에게 소유권이 있음이 분명한 경우라면, 추진위원회는 해당 추진위원을 상대로 소유권에 근거한 동산인도단행가처분 및 강제집행을 시도해볼 수 있다. 쉽지는 않다. 추진위원은 소송과정에서 자신은 더 이상 동의서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거나 폐기했다고 주장할 것이 자명한데 이 경우 추진위원회가 반대사실 즉, 해당 추진위원이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동의서를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고, 승소결정을 받더라도 집행장소·대상이 특정되지 않아 집행이 까다롭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조력을 받고 적절한 형사고소를 곁들인다면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방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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