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정 도시정비법은 직접 출석이 어렵다고 인가청이 인정하는 경우 전자적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정당한 법률은 실현 불가능하거나 위법한 행위를 국민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동안 도시정비법의 직접 참석규정은 방역 대책에 역행하는 위법한 행위를 사실상 유발한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 방역 대책에 역행하지 않으면서 총회를 소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역 대책의 강도가 누그러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개선된 입법에 발맞춰 몇몇 조합이 선도적으로 전자적 의결방법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이다 보니 아무래도 시행착오가 불가피한 듯하다.

먼저 불거진 이슈는 이왕 전자적 의결에 관해 인가청의 양해가 있었으니 아예 서면결의까지 전자적 방법으로 시행함으로써 의결권 행사방법을 일원화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도의 근거가 없더라도 조합원들의 폭넓은 의결권 보장을 위해 전자적 의결방법도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몇 달 전 부산고등법원 결정을 계기로 전자적 방법으로 서면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도시정비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전자 서면이 보편화 된 현실과 조합원 의결권 보장을 고려해 대법원에서 부산고등법원 결정이 파기될 가능성도 없진 않으나 유사 사안에서 취했던 대법원의 해석론을 고려하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아무래도 전자적 방법의 결의는 직접 참석을 대체하는 제한적 범위에서만 운용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직접 참석에 갈음하는 전자적 의결의 시기적 제한 문제도 거론된다. 조합은 별다른 고민 없이 총회일 이전에 특정일을 택하거나 아니면 서면결의와 유사하게 일정 기간을 두어 전자적 의결절차를 사전에 진행하려 계획했다. 조합 업무처리의 효율성과 조합원 의결권 행사 편의를 두루 고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가청 입장은 달랐다. 직접 참석에 갈음하기 위한 목적이니 직접 참석과 똑같은 시간적 제한을 두어야 마땅하며 반드시 총회 당일 소집시간에 맞추어 전자적 의결절차를 실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적 의결에 관해 시기적 제한을 명시하지 않은 도시정비법을 너무 엄격하게 해석해 전자적 의결권을 위축시킨다는 의구심이 들지만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총회일 이전의 의결권은 서면결의가 있으니 굳이 전자적 방법까지 중복해 보장할 필요가 없고 전자적 의결이 직접 참석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니 시간적 제한을 두는 것이 이론적으로도 생경하진 않다.

하지만 도시정비법이 총회 현장을 조합원들에게 생중계할 의무를 함께 부과하지 않는 이상, 전자적 의결을 총회 진행 시간에 맞추든 총회일 이전에 진행하든 안건에 대한 비판·토론권의 보장 정도에 질적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 공적 부문 특유의 과도한 소극성으로 괜한 불편함만 더해진 느낌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조합으로서는 인가청의 입장을 전적으로 따르는 편이 현명하다. 이따금 인가청의 해석과 다른 총회를 강행하고 변경인가 신청이 반려되면 행정소송을 불사하는 조합들도 있지만 대부분 쓴맛을 보게 된다. 민사적으로는 조합이 옳을 수 있지만 행정소송은 재량권 일탈·남용 등 처분의 위법성 판단에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민사적 이슈를 자꾸 인허가와 연관 짓는 행정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법원이 확립한 민사 법리보다 행정청 해석론이 우선하는 모순을 눈 딱 감고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속 편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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