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장기화로 전자투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최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개정되어 재건축·재개발 총회에서도 전자투표가 가능해졌다는 소식은 다들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개정법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제3조제1호에 따른 재난의 발생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하여 시장·군수등이 조합원의 직접 출석이 어렵다고 인정하는 경우” 에 한하여 전자투표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 조항에 근거하여 실시된 전자투표에 참여한 조합원은 총회 현장에 가지 않아도 ‘직접 출석’한 것으로 간주된다.

전자기기에 익숙한 몇몇 조합 관계자는 이 참에 개정법이 적용되지 않는 일상적인 총회에서도 전자투표가 가능하도록 정관을 개정하고 싶다고 한다. 도시정비법은 총회 의결방법을 정관에서 알아서 정하도록 하고 있고, 서면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지 서면으로만 해야 한다거나 전자적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아니므로 문제될 것이 무어냐는 것.

이 때 실시되는 전자투표는 개정법과 같은 직접 출석 간주효과는 없지만, 조합원들의 참여율을 높이고 엄격한 본인인증 및 로그기록을 통한 위·변조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효용이 있다. 정관으로 정해두면 일상적인 총회에서도 전자투표가 가능하다는 견해는 자필로 작성한 종이문서와 본인인증을 통해 작성한 전자문서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일반인의 법 감정, 대면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던 많은 것들이 비대면으로 대체되고 있는 시대적 정서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부산고등법원은, 조합이 조합원들에게 지정된 웹사이트에 접속한 후 총회 안건에 대한 찬성·반대·기권의 의사표시를 입력하게 한 사안에서, 전자투표는 법률이 전자적 방법에 의한 의결권 행사를 명문으로 허용한 경우에만 가능한데 현행 도시정비법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으며, 웹사이트에 기록된 의사표시는 전자적 형태의 정보에 불과하여 계속적으로 의사나 관념이 표시되어 있을 것을 요건으로 하는 ‘서면’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개정법이 적용되지 않는 일상적인 총회에서는 전자투표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부산고법 2021.10.26.자 결정).

개정 조항은 재난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예외적으로 전자투표가 허용된다는 취지에 불과하고, 현행 도시정비법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전자투표를 예외적으로나마 허용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는 판단도 덧붙였다.

판결에 따르면 조합이 정관으로 일반 총회에서 전자투표가 가능함을 정하는 것은 불가하다.

위 논리는 서면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면 조합원은 신중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게 되고 향후 의사표시의 존부와 내용에 대한 다툼이 발생하는 경우 증명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출발하는데, 과연 ‘신중한’ 의사결정이 서면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 의사표시의 존부와 내용에 대한 다툼이 발생한 경우 오히려 전자적 방법에 의한 입증이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위 부산고등법원 판결이 사실관계가 매우 유사한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삼고 있는 점에 비추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의절차에서 다른 판단이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일상적인 총회에도 전자투표를 도입하고자 하는 조합이 있다면, 추가 입법이 있을 때까지 좀 더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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