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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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총회에서 전자 투표 방식으로 행사한 서면결의서는 효력이 없다는 부산고등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도시정비법상 전자 투표와 관련한 명문 규정이 없는 만큼 서면결의서로의 효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산고등법원 제6민사부(재판장 박준용)는 지난달 26일 부산 모재건축구역의 조합원이 조합을 상대로 낸 ‘임시총회결의 효력정지가처분’에서 1심 결정을 뒤집고, 총회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결정문에 따르면 이 구역은 지난 6월 조합장 등 임원 전원 해임을 안건으로 한 임시총회를 개최했다. 당시 총회에 앞서 총회 발의 측은 서면참가 방법 중 하나로 특정사이트에 접속해 서면결의서를 제출할 수 있다고 공고했다.

이에 따라 총회에서는 직접 참석한 조합원 7명과 서면결의서 17명, 전자적 결의방법으로 의결한 조합원 522명이 참석함에 따라 전제 조합원 949명 중 546명이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했다. 개표 결과에서도 과반수가 해임 안건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나 해임 결의가 이뤄졌다고 선포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총회 결의에서 이뤄진 전자적 결의방법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서면결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현행 도시정비법 제45조제5항에는 조합원은 서면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대리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 서면의결권을 행사한 경우에는 정족수를 산정할 때에 출석한 것으로 보도록 했다.

문제는 서면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전자문서나 전자투표를 ‘서면’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전자문서나 전자투표는 전자적 형태의 정보에 불과해 지속적으로 의사나 관념이 표시되어 있을 것을 전제로 하는 ‘문서’ 또는 ‘서면’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고 봤다. 만약 전자문서 등이 전자적 형태의 기록인 ‘서면’을 대신하기 위해서는 법률에 명문 규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해당 구역에서는 전자투표 이후 일부가 수정됐다는 문제도 있었다. 전자문서법에 따르면 전자문서는 전자적 형태로 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적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전자문서를 서면으로 보기 위해서는 전자문서의 내용을 열람할 수 있어야 하고, 전자문서가 작성되거나, 저장된 당시의 형태로 보존돼야 한다.

하지만 해당 구역은 당초 임시총회 개최일을 6월 30일로 예정했지만, 6월 24일로 변경됨에 따라 전자 결의서상의 일시도 수정했다. 따라서 조합원에 의해 작성된 결의서가 저장된 이후 수정된 만큼 전자문서법에 따른 서면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더불어 재판부는 총회일시 등 안내문구 부분만 수정됐을 뿐 조합원들의 투표 일시와 투표결과는 수정되지 않아 형태가 보존된 것이라는 채무자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면결의서는 결의가 이뤄지는 총회의 일시와 장소, 서면의결권 행사 취지, 투표 결과 등 모든 요소가 합쳐져서 하나의 서면결의서라는 독립된 문서로서의 기능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즉 각 부분을 별도의 문서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전자적 결의방법은 서면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총회 의사정족수에서 제외해야 하는 만큼 조합원 949명 중 24명만 의결권을 행사한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봤다. 더불어 총회 소집 시 개최 7일 전까지 소집통지를 해야 함에도 총회일정을 변경하면서 통지일정을 지키지 않아 소집절차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는 임시총회에 대한 효력을 정지하지 않을 경우 법적 분쟁이나 회복 불가능한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다고 결정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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