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서는, 계약 해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정비사업은 생각보다 꽤 크고 복잡한 사업이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천 명의 조합원이 참여하고 수천억 원의 사업비가 지출되며, 행정, 설계, 감정평가, 철거, 이주, 시공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사업시행자인 조합은 해당 정비사업만을 위해 만들어지며, 정비사업이 완료되면 해산하기에 전문 지식을 갖추기 힘들다. 이러한 이유로 사업시행자인 조합은 정비사업 시행을 위하여 협력회사와 계약을 체결한다. 시공사를 비롯하여 정비업체, 설계회사, 감정평가법인 등을 꼽을 수 있다.

과거부터 협력회사와의 계약을 언제 체결해야 하는지, 계약 체결을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는 무엇인지 등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개정으로 현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는 일반경쟁 입찰을 계약 체결의 원칙적인 방법으로 정하고(제29조 제1항), 시공자, 설계자 및 감정평가법인등의 선정 및 변경은 반드시 총회의 의결을 거칠 것을 정하고 있다(제45조 제1항 제5호).

조합이 한번 선정된 협력업체와 마지막까지 완주하면 좋겠지만, 정비사업의 기간이 긴 만큼 의견 충돌이나 상호 신뢰 관계가 깨지는 사례도 제법 있다. 이때, 조합은 협력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협력업체를 선정하려고 하며, 협력업체에서는 계약에서 정한 해지 사유가 발생하지 않았고, 계약해지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이 법적으로 타당한가.

이를 확인하려면, 계약의 성격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계약의 성격에 따라 적용되는 민법상의 법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시공자 등과의 계약은 민법상 위임계약으로 평가된다. 민법에 따르면,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고(제689조 제1항), 당사자 일방이 부득이한 사유 없이 상대방의 불리한 시기에 계약을 해지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제689조 제2항). 이처럼 위임에서 임의해지가 인정되는 이유는 당사자들 사이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판례 역시 계약에서 정한 해지 사유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계약해지는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물론, 계약을 해지할 정당한 사유가 없음을 들어 계약자의 지위보전 가처분을 인용한 하급심 판결례도 있다).

다음으로, 계약이 중도해지된 경우 보수금은 어떻게 결정될지 문제 된다. 문제가 된 계약이 위임계약에 해당하므로, 수임인은 민법 제686조 제3항에 따라 이미 처리한 사무의 비율에 따른 약정 보수금을 청구할 수 있다. 즉, 조합은 계약이 종료된 시점까지 수임인이 처리한 사무의 비율에 따른 약정 보수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또한, 조합이 기존 회사와 계약을 해지하고 후속 업체와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계약에 따른 대금을 후속 업체에 지급하였는지 여부는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대법원 2000. 8. 22. 선고 2000다19342 판결 등 참조)

마지막으로 위임계약에서 보수액에 관하여 약정한 경우에 수임인은 원칙적으로 약정보수액을 전부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위임의 경위, 위임업무 처리의 경과와 난이도, 투입한 노력의 정도, 위임인이 업무처리로 인하여 얻게 되는 구체적 이익, 기타 변론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약정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반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예외적으로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의 보수액만을 청구할 수 있다(대법원 2012. 4. 12. 선고 2011다107900 판결 등 참조). 따라서 보수액이 부당하게 과다한 경우에는 감액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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