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최대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한 재건축 조합. 입찰에 참가한 건설사들이 신축 아파트에 각 사의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겠다고 밝히면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관심을 받는 것에 그치면 좋았으련만 브랜드 문제는 결국 건설사 간 날 선 공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안은 이러했다. 한 건설사가 입찰제안서에 조합원들이 아파트 브랜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브랜드 선택제’를 제안했다. 조합원들이 ‘드레브’라는 이름 앞에 프리미엄 브랜드를 붙인 ‘아크로 드레브’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한 것. 다만 아크로를 선택할 경우 상품 및 공사금액 변경이 수반된다고 기재했다.

제안서 제출 후 조합원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아크로를 선택하면 반드시 설계나 공사금액이 변경되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해당 건설사는 설계나 공사금액 변경 없이 아크로를 채택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그러한 내용으로 홍보했다.

그러자 경쟁사는 즉각 반발했다. 하이엔드 브랜드를 먼저 제안한 것은 자신들이고, 해당 건설사는 입찰제안서에 아크로를 선택하면 공사금액이 변경된다고 기재하였으므로 공사금액 변경을 조건으로 해서만 ‘아크로 드레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공사금액을 변경하지 않고 아크로를 채택하는 것은 입찰제안 이후 입찰조건을 유리하게 변경한 것으로 입찰 참가자격 박탈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합이 해당 건설사의 입찰자격을 박탈하지 않자 싸움은 결국 법원으로 가게 되었다. 며칠 후로 예정된 시공자 선정 총회의 개최를 금지해 달라는 가처분이 제기된 것이다.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 주었을까? 이에 앞서, 우선 법원이 입찰을 무효로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판례는 입찰 참가업체들이 입찰참여규정을 위반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입찰을 무효로 보지 않는다.

위반행위의 태양이나 정도 등을 감안하여 ‘그 위반행위로 인해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시공자 선택권이 침해되어 사실상 경쟁입찰이라고 볼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 한해 입찰을 무효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브랜드 선택제를 제안한 후 공사금액 변경 없이 아크로를 확정하기로 한 것이 입찰조건 변경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입찰조건 변경으로 볼 경우 이러한 위반행위로 인해 조합원들의 시공자 선택권이 침해되어 경쟁입찰이라고도 볼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는지’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에 대해 법원은 입찰제안서에서 제안한 브랜드 선택제의 내용과 동일성을 상실할 정도로 다른 홍보를 한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크로 드레브를 확정하면서 도급금액을 변경하지 않은 것이 ‘입찰조건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나아가 재판부는 ‘설령 어떠한 위반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시공자 선택권이 침해하게 되어 사실상 경쟁입찰로 볼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까지 덧붙였다.

시공자 선정을 위한 입찰은 조합원들의 선택권이 달린 문제이고 경쟁입찰에는 입찰참여자들의 일탈이 어느 정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입찰이 무효인지는 ‘누가 규정을 위반하였느냐’의 관점보다는 ‘조합이 입찰참가자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조합원들의 의사를 왜곡시키지 않도록 얼마나 노력했는지’의 관점으로 판단해야 한다. 경쟁에서 불리해진 어느 일방이 판을 깨기 위해 무리한 상황을 연출할 때마다 입찰절차가 중단될 수 있다면, 입찰은 얼마나 불안정한 제도로 전락하겠는가. 가처분을 기각한 법원의 결정은 이러한 점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비롯된 지극히 타당한 결론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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