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고에 이어) 설령 조합이 그런 통지를 한다 해도 법률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거나 책임질 수 없는 비전문적 의견 개진에 그칠 뿐이다. 손해배상 책임의 존부나 정도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얘기다.

민법상 도급인 해지 규정은 도급인의 해지권 행사 자체는 인정하되 손해배상 책임을 통해 수급인의 이해를 보호하려는 취지이다. 계약 해지를 당한 수급인(시공자)이 도급인(조합)에 대해 ‘당신은 법에 나온 손해배상 책임을 제대로 알고 해지하는 것이냐? 법도 잘 모르고 해지했으니 해지는 무효다’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시공계약 해지로 인해 손해를 입게 될 수급인(시공자)의 요령부득 오지랖일 뿐 민법 규정 본래 취지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해지에 관해 의결권을 행사한 조합원들은 해지의 가능성과 손해배상 책임에 관한 민법의 내용을 알고 있는 것으로 대접받아 마땅하다. 도시정비법령이나 정관이 시공자 해지에 따른 법률적 리스크를 별도로 조합원에게 통지하게 하는 의무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 이상 해지 결의 효력을 손해배상 책임 고지 여부에 좌우되도록 하는 것은 법 해석 보다 입법의 영역에 가깝다.

다음은 사실적 측면. 가처분 결정과 같은 법적 논리를 통해 시공자 해지 안건 처리에 보다 신중을 기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조합원들의 이익이 보호될 수 있다면 법률적 측면에서 다소 무리가 있어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가처분 결정 이후 전개되는 양상은 그와는 사뭇 다르다.

해당 조합들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오로지 해지 안건 처리만을 위한 총회를 재차 개최한다. 법원이 기대했던 바대로 손해배상의 고지가 그토록 조합원들의 해지 의사를 좌우할 만큼 결정적 요인이었다면 두 번째 총회에서 해지에 대한 조합원들의 찬성비율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유의미하게 줄어드는 변화를 보여야 마땅할 터인데 오히려 조합원들의 해지 의사는 드높아지고 확고해지기만 했다.

장래의 불확실한 손해배상 위험성이 더 나은 시공사를 선정해 더 많은 개발이익을 얻겠다는 조합원들의 의지를 꺾지 못한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재판부의 본래 의도와는 달리 가처분 결정이 조합원들의 궁극적 편익에 기여하기 보다 조합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절차를 반복하도록 강요함으로써 해지에 따른 갈등과 고통의 시간을 한시적으로 연장하는 정도의 의미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손해배상의 위험 고지가 항상 조합원 의결권을 보장하는 측면으로만 작용하리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손해배상 책임을 과도하게 부풀려 오히려 자유로이 형성되어야 할 조합원들의 시공자 선택권을 억제하는 쪽으로 악용될 위험도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다.

이미 결별을 마음먹은 조합원들과 소송을 불사하며 저항하는 시공자를 제3자가 억지로 붙들어 둔다고 한들 조합과 시공자의 상생이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결혼 관계에 빗대자면 사실상 파경에 이른 것이나 진배없는데 제3자가 마음 붙여 잘살아보라며 물색없이 조언한다면 아무리 진심이라도 그처럼 갑갑한 일이 없을 것이다.

다행히 손해배상 위험 고지가 시공자 해지의 필수요건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병존하고 손해배상 위험 고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재판부도 많다.

법리적으로 매끄럽지 않고 사실상의 갈등 해소 기능도 기대하기 어려운 가처분 결정을 조합원들의 의결권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유지하는 것이 정말 필요할까. 이번 가처분 결정까지 보태졌으니 비슷한 사안이 반복될 것으로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미래의 재판부가 깊이 헤아려 주시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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