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그래픽=홍영주 기자]

지난 2020년 여름, A씨는 자주 가는 등산로를 지날 때마다 매번 눈에 밟히는 물건들이 생겼다. 재개발 철거현장 인근에 버려진 합판 몇 장, 나무 묶음, 방충망 등이 그것이었다. 옆 동네 지인이 밭에 울타리로 쓸 나무판때기가 없다고 했던가? A씨는 다음 날 트럭을 끌고 와 길거리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워갔다.

근처 공사장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신고한다는 등 경고했지만, 고작 쓰레기 몇 개 주워가는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지인 밭에 방충망을 쳐주는 보람찬 과업을 마치고 귀가한 A씨에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절도죄로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A씨는 부리나케 경찰서로 자진 출석해 자신은 평소 다니던 등산 코스 골목에 폐목재가 있어 가져간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겼고, A씨는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기소유예란 죄는 인정되나, 피의자의 연령이나 환경, 범행의 동기와 수단 등 여러 정황 등을 참작해 다시 한 번 성실한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고 용서해주는 것을 말한다.

A씨는 기소유예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이에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받았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기소유예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수사기관과 달리 전원재판부 결정으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보강수사 없이 A씨의 혐의를 인정하는 기소유예처분을 한데에는 수사미진, 법리오해의 잘못이 있다”며 “이로 인해 A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고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헌재가 ‘빨간줄’을 지워줬지만, 길에서 주운 장물 몇 개를 가져간 대가치고 A씨의 심력 소모가 상당했을 터다. 우리 모두 길거리에 탐나는 물건이 있어도 함부로 가져가지 말자. 원치 않는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는 일이다.

 

이호준 기자 leejr@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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