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부산고법에서 다소 충격적인 판결이 나왔다. 홍보요원이 걷은 서면결의서를 무효로 본 것. 총회 참석이 대부분 서면결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홍보요원을 통한 서면결의서 징구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렇기에 이 판결은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이 판결은 사안이 유사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임원 선임총회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유명 판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판결에 따라 홍보요원이 받아온 서면결의서는 무효일까. 우선 부산고법이 어떠한 이유에서 홍보요원이 징구한 서면결의서를 무효라고 보았는지 살펴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안의 선거관리규정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사안에서 선거관리규정은 서면결의서를 “우송 또는 직접방문 제출할 수 있다(단, 서면투표지 확인, 투표기표방법 및 총회성원확보를 위한 전문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이 규정을 ‘홍보요원 등 제3자를 통한 투표용지 제출을 금지하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이 대목에서 의아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면 총회성원확보를 위한 전문인력을 고용할 수 있음을 규정한 단서조항은 무엇이란 말인가. 재판부는 이 단서가 ‘홍보요원을 통해 서면결의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홍보요원을 고용할 수 있는 근거와 홍보요원의 업무 범위’를 규정한 것으로 보았다.

‘단서(但書)’라는 것의 의미를 안다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해석이다. 단서란 ‘법률 조문이나 문서 따위에서 본문의 다음에 그에 대한 어떤 조건이나 예외를 덧붙여 쓴 글’이다.

즉, 단서는 본문의 내용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본문을 떠난 독자적인 단서는 있을 수 없다. 본문이 제3자를 통한 투표용지의 제출을 금지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단서는 제3자를 통한 투표용지 제출을 허용하는 예외를 규정하여야 한다.

만약 단서가 부산고법의 해석처럼 단지 홍보요원 선임 근거와 업무 범위를 규정한 것이라면, 서면결의서 제출 방법을 제한한 본문 뒤에 단서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별개 항목으로 규정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선거관리규정에 ‘조합원이 서면결의서를 홍보요원에게 전달하여 홍보요원이 피고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어 홍보요원을 통한 제출이 금지된다고 보았다.

조합원이 서면결의서를 작성한 후 직접 부치거나 조합사무실을 방문하여 제출하는 것은 실무상 흔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홍보요원이 조합원을 방문하여 징구하지 않으면 성원을 채우기 쉽지 않고, 이 때문에 조합은 서면결의서 징구를 통한 ‘총회성원확보’를 홍보요원의 가장 큰 역할로 인식해왔다. 그 결과 홍보요원이 ‘총회성원확보’를 한다는 것은 곧 ‘서면결의서를 징구’한다는 의미이므로 ‘총회성원확보를 위해 전문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필요·충분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선거관리규정의 본문과 단서를 조화롭게 해석하면, 단서의 내용은 ‘우송 또는 직접 방문제출만 허용되는 서면결의 제출방법의 예외로서 조합이 총회성원확보를 위해 선임한 홍보요원을 통해 제출하는 것을 허용’하는 취지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 판결은 아직 대법원의 판단을 받지 않았다. 확정된 판결이 아니므로 부산고법의 판결을 마치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설령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된다 하더라도 그 사안에서는 선거관리규정으로 서면결의서 제출 방법을 제한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그렇게 판단한 것일 뿐, 홍보요원이 서면결의서를 걷었다는 이유만으로 서면결의서를 무효로 본 것이 아니다. 법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법원의 판단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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