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시공자 선정의 첫 관문인 현장설명회는 관심 있는 업체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다. 현장설명회가 입찰 흥행의 지표로 여겨졌기에 조합 역시 가능한 한 많은 건설사가 참여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장설명회 참석이 실제 입찰참여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고 심지어 현장설명회 호황 이후 유찰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현장설명회 참석 업체 수를 보고 입찰 흥행을 기대했던 조합으로서는 매우 당황스럽고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장설명회부터 허수를 배제하고 실제 경쟁의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이른바 ‘현설보증금’이다. 입찰참여 후 납부하는 입찰보증금의 일부를 현장설명회 참석의 조건으로 미리 납입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좋은 취지와는 달리 악용 사례가 생기기 마련이다. 현장설명회 단계부터 의미 없는 허수를 배제하고 실질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현설보증금 액수는 점차 높아졌고 급기야 입찰보증금의 절반 정도를 현설보증금으로 납부하도록 요구하는 사업장도 생겨났다. 현설보증금이 입찰의 진입장벽으로 작동해 사실상 제한경쟁과 다를 바 없어진 것이다.

극히 일부 사업장에서는 아예 유찰을 유도해 수의계약 절차를 진행하려는 포석의 일환으로 높은 현설보증금이 활용되기도 하였으니 이 대목에서 경쟁의 실질화라는 현설보증금 본래 취지는 무색해졌다.

일반경쟁을 통해 시공자를 선정하도록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의 취지가 현설보증금을 통해 회피될 조짐이 보이자 국토교통부가 칼을 빼 들었고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개정되기에 이른다.

개정된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명시적으로 현설보증금 납부금지를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조합이 입찰마감일 5일 이전에 입찰보증금 납부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입찰보증금 납부요구의 제한이지만 사실상 현설보증금 금지 의도가 담겨 있는 개정이다.

그런데 개정된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충분치 않다. 현설보증금이 활용되고 그로 인해 부작용이 빚어지는 입찰은 시공자 선정에 관한 것인데 일반계약 처리기준에 개정내용을 집어넣은 것이다. 일반계약 처리기준이 시공자 선정에도 적용되는지 다투어지고 있는 마당에 직접 시공자 선정기준에 삽입하지 않아 괜한 논란만 남겼다.

일반계약 처리기준에 담은 것까지는 그래도 이론적 극복이 가능하다. ‘일반기준’은 특별히 예외를 선언하지 않은 이상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기에 시공자 선정기준에 입찰보증금 납부 시기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는 한 시공자 입찰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정규정이 사업시행자인 조합이 요구하지 못하게 한 ‘편면적’ 의무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현설보증금의 부작용이 조합의 과도한 요구로 비롯된 것이니 그에 대응한 규제도 조합의 요구를 금지하는 쪽으로 반영된 것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조합의 요구가 아니라 입찰참여자의 자발적 납부 형식을 취했을 때 개정규정의 현설보증금 금지 취지가 무력화될 우려가 크다.

최근 강북의 한 재개발 현장에서 입찰보증금 납부 순서에 따라 기호를 우선 배정하겠다고 공표함에 따라 유리한 기호를 배정받으려는 일부 시공사들이 현장설명회 당일 입찰보증금을 납부하는 사례가 있었다. 조합의 요구에 의한 보증금 납부가 아니기에 계약업무 처리기준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 의견이었다. 보증금 납부 순서에 따라 유리한 기호를 배정하는 것은 사실상 조합이 현설보증금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는 비판이 있지만 현재의 편면적 의무규정만으로 이를 규제하기엔 역부족이다. 온전한 규정을 만들기 위한 국토부의 고민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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