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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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이 HUG 주택도시보증공사의 불합리한 분양가 산정으로 후분양에 내몰리고 있다. 주변 시세를 고려해 합리적인 분양가를 산정하겠다는 목표로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선에 나섰지만, 분양가가 되레 낮아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3기 신도시 등에 대한 사전청약까지 나서고 있지만, 정작 일선 현장에서는 주택공급이 늦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HUG, 예상에 못 미치는 분양가 산정… 대전·부산·인천 등 전국서 줄줄이 후분양 검토 선언=대전 분양시장의 최대어로 평가 받고 있는 서구 탄방1구역 숭어리샘 재건축은 최근 후분양을 진행하기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 HUG가 당초 조합이 신청했던 일반분양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산정함에 따라 사업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구역은 인근에 위치한 ‘둔산 e편한세상’을 비교사업장으로 설정해 3.3㎡당 2,200만원의 일반분양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HUG는 분양보증 상한금액을 3.3㎡당 1,137만원으로 산정해 조합에 통보했다. 조합이 최저 분양가로 고려한 1,800만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에 따라 조합은 이사와 조합원 등으로 구성된 협상단을 꾸려 시공자와 협상을 진행하고, 총회 결의를 통해 최종 후분양 여부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이 단지는 총 1,900가구가 넘는 대단지로 일반분양분이 1,400가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재개발구역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온천4구역도 후분양을 검토하고 있다. 구역 인근 신축아파트의 시세가 3,000만원을 넘어섰지만, HUG는 1,628만원의 분양가를 조합에 통보한 상황이다. 조합이 신청한 1,900만원대와 비교하면 약 300만 원가량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조합은 지난 4월 말 착공에 들어갔다. 4,000가구가 넘는 대규모 단지인 만큼 공사를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HUG의 재심사를 기다리고 있지만, 후분양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부산에서는 괴정5구역이 최근 시공자와의 협상을 통해 후분양을 사실상 확정했으며, 명륜2구역도 후분양 가능성을 열어놓고 시공자 선정에 나섰다. 범천1-1구역도 후분양을 포함해 조합이 원하는 시기에 일반분양하는 조건을 내건 시공자를 선정한 상태다.

인천에서는 부평4구역이 분양가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후분양으로 돌아섰다. 재개발을 통해 2,400가구 이상의 주택을 공급할 예정으로 조합은 3.3㎡당 1,800만원대에 분양보증을 신청했다. 하지만 HUG가 3.3㎡당 1400만원대의 분양가를 제시함에 따라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후분양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HUG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선, 시세 반영한다더니 되레 과거보다 분양가 낮아져=일선 조합들이 후분양으로 돌아선 이유는 HUG의 개선된 고분양가 심사제도로 인해 되레 분양가가 낮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HUG는 지난 2월 고분양가 심사규정과 시행세칙을 전면 개정해 시행에 들어갔다. 사실상 분양가를 통제해 민간 사업자의 주택공급 유인을 저해하고, 구체적인 심사기준을 알 수 없어 투명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심사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다.

HUG는 새로운 심사제도를 통해 주변 시세의 일정비율(85~90%)을 상한으로 고려해 분양가 등락에 따른 리스크 관리 기준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었다. 분양가와 시세 간 지나친 차이를 보완해 공급 유인을 제고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심사기준에는 분양기준 비교사업장과 준공기준 비교사업장 중 높은 금액을 심사 상한 분양가격으로 책정하는 방안이 도입됐다. 다만 인근 시세에 보증위험관리율(투기과열지구 85%, 투기과열지구 외 지역 90%)을 적용한 금액을 넘을 수 없도록 했다.

문제는 바로 인근 시세를 책정하는 기준이다. 예를 들어 비교사업장을 기준으로 분양가가 3.3㎡당 2,000만원으로 산정됐더라도, 인근 사업장의 가격이 1,000만원인 경우에는 보증위험관리율을 적용해 최대 900만원(투기과열지구 850만원)을 넘을 수 없다.

특히 인근 사업장은 해당 사업장으로부터 500m 이내 동일 행정구역 내 준공 후 20년 이내의 사업장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인근 지역에 신규 분양아파트가 없다면 최고 준공 20년이 지난 구축아파트의 시세를 적용 받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후분양을 검토하고 있는 단지들 대부분이 인근 구축아파트를 기준으로 분양가가 산정된 곳들이 대부분이다.

HUG의 분양가 통제로 후분양 단지가 늘어날 경우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정책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정부는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민간 분야에서 공급이 더딜 경우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당장 내달부터 인천 계양을 시작으로 3기 신도시에 대한 사전청약을 진행한다. 선분양보다 앞서 사전에 미리 청약을 진행함으로써 주택시장의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민간사업이 후분양으로 돌아설 경우 주택공급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의 엄정진 정책기획실장은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선을 통해 분양가를 현실화하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분양가가 더 낮게 책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분양가 통제로 후분양이 늘어날 경우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에도 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적정한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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