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결의 징구는 총회를 준비하는 조합으로서는 늘 커다란 숙제다. 총회 참석의 절대적 다수를 직접 참석이 아닌 서면 참석이 점하기 때문이다.

서면결의는 그동안 너무나 많은 오해와 비난에 시달려왔다. 사람이 아니라 서류만 모이니 총회가 허울이 된다, 위조가 쉽다, 징구요원의 입김에 따라 찬성 반대가 결정된다 등등. 그러나 서면결의 제도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 한 의미 있는 지적으로 보기 어렵다.

우선 사람이 아니라 서류를 모아 총회를 한다는 것은 직접 참석이 그만큼 번거롭고 힘들어 총회 성사를 위해 불가피하게 서면결의가 등장하게 된 원인 자체를 탓하는 것과 다름없다. 총회의 극단적 서면화를 방지하기 위해 법으로 직접 참석 비율을 강제하고 있으나 이 역시 총회의 실질화 보다는 규제나 부담에 가깝게 체감된다.

서면결의 위조 역시 모든 문서에 공통된 문제이기에 서면결의가 특히 비난받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 위조가 무서워 문서라는 고전적 의사전달 방식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홀로그램 표식이나 일련번호 표기 등 위조방지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안해 신뢰도를 높이는 노력을 하면 될 일이다.

아마 서면결의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점은 징구요원에 의한 의사 왜곡 현상일듯하다. 조합원들의 무관심에 편승해 징구요원이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해 그들이 유도하는 대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것은 조합원 스스로 안건의 의미를 이해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린 후 누구의 간섭이나 영향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겠지만 이는 가상현실에 가깝다.

오히려 징구요원의 도움을 받아 안건에 대해 상식 차원의 개략적 이해 후 찬성 반대의 의사결정에 곧바로 나아가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깊이 있는 이해보다 안건 처리를 원하는 조합 집행부에 대한 지지와 반대라는 기본 입장에 좌우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의미다. 안건 상정 자체가 안건 처리를 바란다는 집행부의 암묵적 의사표시에 가깝고 조합원들은 안건에 관한 찬성 반대의 표시로 집행부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사를 대신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징구요원의 설명만 듣고 선선히 찬성이나 반대 의사를 던진 조합원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은 없다. 왜 더 자세히 고민하지 않고 그렇듯 쉽게 서면을 내느냐 하는 지적은 결국 정치적 입지가 다름을 이유로 상대방을 힐난하는 것에 가깝고 결과적으로 타인의 의결권을 억압하게 될 소지가 다분하다. 안건에 관해 어느 정도의 이해가 필요하고 또 이해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일지에 관한 판단조차도 조합원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당신의 의결권 행사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져 올바르지 않다고 일갈한다면 이를 곱게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법원 역시 강요나 사기에 가까운 기망행위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징구요원의 존재만을 이유로 서면결의가 무효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 건전한 판단능력을 가진 성인이라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의사결정에 이르는 것이고 일단 결정된 의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 되어야 마땅하다는 전제에 서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 대목에서 부산고등법원 판례를 거론하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 우편 제출이나 직접방문 제출이 아니라 징구요원에 의해 제출된 것으로 보이는 서면결의는 무효라고 선언했던 바로 그 판결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결론은 서면결의 제출방법을 직접제출 또는 우편제출로 한정하는 특이한 선거관리규정을 둔 조합에 국한되는 것일 뿐 대부분 조합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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