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진 실장 |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엄정진 실장 | 한국주택정비사업조합협회

2020년 1월 처음 중국으로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는 전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갔고,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연일 충격적인 사망소식으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1년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나라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 상황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선제적 검사와 방역기준 마련에 따른 신속한 대응, 그리고 국민의 적극적인 방역지침 준수로 해외 여러 나라와 견주어 비교적 성공적인 방역의 모범적 사례로 평가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는 실로 충격이라고까지 표현할 만큼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일상이 펼쳐졌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로 다가온 것이 바로 비대면(Untact) 삶의 형태이다.

이는 사람과 사람간의 접촉을 최소화하여 호흡기를 통한 바이러스의 전파를 원천적으로 줄여보고자 하는 취지이고, 이는 일상의 행동양식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비대면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재건축·재개발 또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재건축·재개발로 대표되는 정비사업은 다수의 조합원(토지등소유자)으로 구성된 법인으로서 구성원 간 첨예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존하는 집단이라 표현할 수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이해관계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업추진을 위한 의사의 결정은 ‘총회’라는 최고의결기구를 통해 결정된다. 정비사업의 총회는 정비사업을 규정하고 있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이라 함)’에서는 사안의 중요도를 고려하여 일정비율 이상의 조합원이 반드시 총회에 참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치러지는 총회는 비대면 원칙에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방역지침은 위험도에 따라 여러 단계로 조정되고 있으나, 근간은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최소화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단계에 따라 일부업종에 대해서는 집합금지 명령을 발령하였고, 일상에서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조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정비사업 주체들은 정부의 방역지침 단계에 따라 다양한 비대면 총회를 계획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혹자는 총회를 연기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의견을 수렴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정비사업은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부터 집행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도시정비법의 규정을 따르도록 하고 있으며, 동법이 정한 범위를 벗어난 행위(또는 집행)는 위법사항으로 무효의 사유가 되며, 일부 규정위반에는 처벌이 뒤따른다는 것이다.(일례로 정비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예산의 수립은 당해 연도에 수립하는 것이 원칙이며, 예산의 수립 없이 자금이 집행되는 경우 조합이 처벌을 받도록 규정되어 있고, 예산에 대한 결의는 반드시 총회에서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즉,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총회를 개최하여야 하는 필연적인 구조로 되어있다.)

이에 조합에서는 방역지침 단계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에 맞게 야외 총회(공터, 정비사업 공사현장, 야외 주차장, 부두 하역장 등)와 드라이브 스루 방식의 비대면 총회, 버스탑승 총회, 공간분리(영화관, 예식장 등의 여러 공간에 분리수용) 영상중계 총회 등 다양한 총회를 진행하게 됐다.

방역지침 2단계 이하에서는 실내 100인 이하 규정 적용 시 공간을 분리해 각 공간별 진행요원을 포함, 방역지침에서 정한 최소인원 단위로 입장하게 된다. 이후 영상중계를 통해 총회를 진행하는 사례가 있으며, 야외에서 총회를 개최할 경우 개인별 2m 이상 이격 거리 유지와 이동금지, 마스크 착용 등 개인방역 수칙 준수를 전제로 총회를 진행한다.

방역지침이 2.5단계로 강화된 경우에는 실내 총회개최는 사실상 힘들어지며, 대다수가 야외총회를 진행하게 된다.

특히 수도권에서 2.5단계 적용시점이 공교롭게도 겨울에 닿아 야외 총회의 대부분은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방식과 버스탑승 방식으로 진행됐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은 각자의 승용차 안에서 총회에 참석하는 방식으로 라디오 주파수 또는 유튜브 생중계 방식으로 운영되며, 버스탑승 총회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로 라디오 주파수 또는 유튜브 생중계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의 비대면 총회 또는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 야외총회 등 지혜를 모아 총회를 개최하지만 운영상 여러 문제점이 없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일례로 비대면 총회를 진행하기 위한 예산이 많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특히 정비사업의 조합원은 적든 크든 비용이 발생되면 부담금이 늘어난다는 기본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사전 방역소독, 장소사용비용, 유튜브 또는 영상장비의 운영 등 총회진행을 위한 부대비용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게 된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는 것이 바로 조합원의 자유로운 토론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총회는 성격상 안건에 대한 찬·반의 토론 후 투표 등의 의결행위로 결정된다. 총회의 의사결정의 중요한 절차인 토론의 제약은 총회의 유·무효 분쟁의 쟁점이 되기도 한다. 즉, 토론권이 보장되지 않은 총회의 결의는 무효라는 최근 법원의 결정을 봐도 알 수 있다. 조합으로서는 매우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각 지자체에서는 방역지침 준수를 전제로 집회(총회)를 허락하고 있으며, 최소한의 시간 내에 총회를 끝내길 요구하고, 발언과 이동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합으로서는 조합원간의 찬·반 토론을 충분히 보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조합원의 불만을 해소하기에도 힘든 상황이 된다.

이에 대한 보완의 방법으로 총회개최 전까지 안건과 관련한 사항에 대하여 사전에 조합으로 문의를 해줄 것을 안내하는 경우가 있으며, 사전 질의서를 받아 총회당일 안건심의 과정에서 답변을 주는 방법을 대안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통상의 총회는 국토부 표준정관에 따르면 총회개최 14일 전에 소집공고를 한 후 최소 7일 전에 안건내용이 수록된 자료집 등을 발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합에서는 총회 소집공고 및 자료집 발송과 총회개최까지의 기간에 사전 질의와 조합원의 의견개진을 받아 총회당일 해당 안건 심의과정에서 답변을 주는 방식이다.

방역지침과 총회라는 상충이 가져오는 문제점이 공유되면서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총회 직접참석 비율기준을 삭제하고자 하는 입법발의가 국회에서 있었으며, 전자투표 방식의 도입도 법안 발의를 통하여 준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도시정비법 제4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직접참석 비율이 생겨나게 된 배경에는 조합원의 직접참석을 최소화하고 직접투표의 보완적 결의방법인 서면에 의한 사전투표 방식이 조합원의 출석 및 발언권에 심각한 제한을 가져온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태동된 법률인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비사업의 시행주체인 조합에서는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법률이 정하고 있는 원칙과 절차에 따른 총회를 진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언젠가는 종식될 것이다. 그렇기에 법령을 임의적으로 개정하는 경우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면 그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법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총회 개최 시 직접참석 요건 제외 등에 대한 한시적 예외규정 등의 제정(한시법)을 통한 합리적인 운영방안의 마련과 아울러 꼭 총회에서만 토론과 발언을 통한 의사전달 방법을 고집할 것이 아닌 상시의견수렴 또는 최소한 총회소집공고 후 총회개최 전까지의 일정기간에 사전 의견수렴의 방법운영에 대한 합의는 중요한 대안적 요소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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