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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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의 현설보증금 요구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이 헛발질 개정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국토교통부는 현설보증금이 공정 경쟁을 방해한다고 판단해 입찰보증금 제도를 개선한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개정안을 마련하고, 지난달 16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따르면 먼저 사업시행자 등은 입찰에 참가하려는 업체에게 입찰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 대신 현설보증금 등을 방지하기 위해 입찰마감일로부터 5일 이전까지 입찰보증금을 요구할 수 없도록 했다. 통상 현장설명회 이후 입찰마감까지는 최소 7일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현설보증금을 요구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초 시공자 선정 과정에서의 현설보증금에 대한 부작용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협력업체 전반에 입찰보증금을 허용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개정 내용 [그래픽=홍영주 기자]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 개정 내용 [그래픽=홍영주 기자]

현행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은 △총칙 △일반 계약 처리기준 △전자입찰 계약 처리기준 △시공자 선정기준 △보칙 등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시공자에 대한 현설보증금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시공자 선정기준’에 입찰보증금 관련 규정을 신설해야 했다. 실제로 주택산업연구원의 시공자 선정기준 개선방안 용역에서는 입찰보증금 규정을 시공자 선정기준인 제31조의2항으로 신설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정작 실제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서는 시공자 선정기준이 아닌 일반 협력업체 선정 시에 적용하는 일반 계약 처리기준에 관련 규정이 삽입됐다. 결국 조합이 협력업체 선정 시 모든 업체로부터 입찰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동안 정비업체나 설계업체 등 비교적 규모가 큰 협력업체에게 입찰보증금을 요구하는 사례는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용역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규모 협력업체에게 입찰보증금을 요구할 경우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업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입찰 과정에서 이른바 특정 업체와 ‘짜고 치기’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정 기준이 시행된 이후 협력업체 입찰 시 입찰보증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재개발 조합은 사업시행인가 협력업체인 △교통영향평가 △경관계획 △토목설계 △국공유지 유무상 협의 △친환경인증업무 △석면조사 △이주관리 △범죄예방용역 △문화재 현상 변경 △국공유지감정평가 등에 대한 입찰을 공고하면서 입찰가의 5% 이상을 입찰보증금으로 현금 납부하는 조건을 달았다.

지방의 한 재건축 조합도 △조합원 분양신청 대행업체 △마을흔적 보전계획업체 △이주관리 및 이주촉진업체 △범죄예방업체 등을 선정하면서 2,000만~1억원 가량을 입찰보증금을 요구했다.

게다가 현설보증금 금지 조항이 정작 시공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시공자의 경우 ‘시공자 선정기준’에서 별도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일반 계약 처리기준에서 정한 입찰보증금 관련 규정에 대한 적용 여부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부칙의 입찰보증금에 대한 경과 조치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부칙 제2조에는 고시 시행 전에 입찰공고를 한 사업에 대해서는 입찰보증금 개정 규정에도 불구하고 종전 규정을 따르도록 했다. 따라서 고시 시행일인 지난해 12월 16일 이전에 현설보증금 납부가 포함된 입찰이 유찰된 경우 동일한 내용으로 입찰 재공고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국토의 김조영 대표변호사는 “시공자에 대한 현설보증금의 폐해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계약업무 처리기준을 개정했지만, 관련 규정이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해석이 모호한 규정도 적지 않아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신속하게 재개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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