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다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부산의 한 재건축 조합의 이사님이다. 도시정비법과 정비사업에 관해 남다른 식견이 있는 분이라 평소 자주 통화했었는데 이날 따라 한 톤 높은 음성이다.

들어보니 대략 ‘서면결의서를 내고 총회 장소에 와서 직접 참석자 명부에 서명만 하고 돌아가도 직접 참석자에 해당하기에 굳이 직접 참석자 비율을 맞추기 위한 넓은 총회 장소 물색에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이냐’는 취지의 확인 전화다.

‘대체 누가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반문하니, ‘어떤 변호사님’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순간 ‘그 변호사’가 ‘과거의 나’는 아니었나 잠시 최근의 자문 내용을 더듬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다. ‘이사님 생각에도 그 말이 맞는 것 같으냐’고 되물으니 ‘본인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확인 전화를 한 것’이라 했다.

그 이사님은 왜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까. ‘생소해서’ 였을 것이다. 도시정비법이 요구하는 직접 참석 비율 때문에 그에 적합한 총회 장소 마련은 늘 총회를 앞둔 조합에 주어진 성가신 과제와도 같았다. 그런데 그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환상적 방안이라니! 조합의 업무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생소하다 못해 기이한 느낌마저 든다.

그 말이 맞는다면 그동안 전국의 모든 조합이 그 답을 찾지 못해 넓은 총회 장소를 찾아 헤매느라 엉뚱한 노력과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단 말인가. 정비사업 전문 변호사들이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무능한 존재이길래 이 쉽고도 멋진 답을 그동안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기상천외한 답을 기어코 찾아낸 몇몇 ‘변호사님들’이 소리소문없이 자신들만의 성공 사례를 축적하는 것에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이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전국 방방곡곡 전파되는 조짐까지 감지되니 상황은 더욱 우려스럽기만 하다.

너무 쉽고 달콤한 방법은 사실 해답이 아니라 함정으로 이끄는 유혹에 불과하다는 것. 웬만큼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들에게는 경험칙에 가깝다. 유감스럽지만 ‘변호사님들’의 빛나는 ‘아이디어’도 이 경험칙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변호사님들’이 어떤 연유로 이런 잘못된 확신 혹은 환각에 빠졌는지 짐작이 되고 이해 가는 측면도 없진 않다. 판례상 거의 확립된 두 가지 법리가 아이디어의 시발점이 된 듯하다.

먼저, 서면결의서를 내고도 총회 현장에 오면 직접 참석자로 인정된다는 법리. 그리고 총회 현장에서 의결권을 행사하고 나면 더는 총회 현장에 머물지 않아도 참석자로 확정된다는 법리.

어려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이 두 가지 법리를 이 ‘변호사님들’이 슬쩍 연결해 본 듯하다. 그리고는 ‘서면결의서를 제출한 사람들이 차례대로 총회 현장에 와서 참석자 명부에 서명만 하면 직접 참석자가 된다. 그렇게 참석자 명부에 순차 서명만 하고 돌아가도 총회 현장에 나와 이미 제출된 서면결의서를 본인의 종국적 의사로 결정하는 취지의 의결권을 행사한 것이니 참석자로 확정된다. 그렇게 이루어진 서명을 긁어모아 직접 참석 비율을 충족할 수 있고 따라서 직접 참석 비율을 고려한 넓은 총회 장소는 더 이상필요 없다. 스터디룸, 컨테이너, 소규모 회의실 등 참석자 명부에 차례로 서명만 받아 의결되었음을 선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확보되면 총회 장소로 아무런 손색없다’는 아이디어를 마침내 완성해내는 것이다. 대체 이 ‘변호사님들’의 아이디어는 어느 지점에서부터 잘못된 길로 접어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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