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은 “추진위원회는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를 받기 전에 추정분담금 등 정보를 토지등소유자에게 제공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법 제35조제8항, 동법 시행령 제32조).

추정분담금을 알려주고 동의를 받을 것. 법문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기에 국토교통부는 추진위가 추정분담금 제공없이 조합설립동의를 받았다면 그 동의가 유효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제공 정도·방법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가 있지는 했지만 조합설립동의 전 추정분담금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은 흔들림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올해 9월 대법원은, 추진위가 추정분담금을 제공하지 않아 조합설립동의가 무효라고 본 원심을 파기하고 추진위가 추정분담금 제공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조합설립동의의 효력을 부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았다(대법원 2020두38744).

조합설립을 인가하는 행정청은 ①추진위가 법정동의서를 사용했는지 ②토지등소유자가 성명을 적고 지장을 날인한 경우에는 신분증명서 사본이 첨부되었는지, 인감증명서를 첨부한 경우에는 동의서에 날인된 인영과 인감증명서의 인영이 동일한지 ③법정 요건 이상의 조합설립동의서가 징구되었는지 만을 심사하면 충분하며 만약 행정청에게 법정동의서에 나와 있지 않은 추정분담금 정보제공 여부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면 불필요한 행정력이 낭비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이 판결 전에도 하급심 중에 “설령 추정분담금 등의 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한 하자가 있더라도 그 하자가 중대·명백하지 않아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당연무효라고 볼 수 없다”는 판시가 더러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모두 추진위가 조합소식지 등을 통하여 대략적인 추산액과 산출근거나마 안내를 했던 사안으로 ‘안해도 된다’ 보다는 ‘해야 되기는 하나 그 정도면 됐다’는 취지에 가까웠다.

조합설립을 둘러싼 법률관계의 명확성, 불필요한 행정력 소모 방지 역시 중요한 가치라는 점에는 의문이 없지만 위 판결로 인해 추진위의 추정분담금 정보제공 의무는 유명무실한 것이 되어 버렸다.

조합설립동의는 철회가 한정적이고 추정분담금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추진위 임원에 대한 벌칙규정도 없다.

이제는 조합설립동의 자체의 무효를 주장할 수도 없게 되었으니 추진위가 추정분담금 정보를 아예 제공하지 않거나 동의율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적은 금액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셈이다.

과거 비용부담에 관한 사항은 토지등소유자가 사업참여를 결정하는 사실상 가장 중요한 기준임에도 법정동의서에 기재된 내용만으로는 자신의 분담금을 예측하기 어려워 토지등소유자의 의사결정권이 실질적이지 못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입법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위로 하여금 토지등소유자에게 법정동의서에 다 담기 어려운 실질적·개별적인 추정분담금 정보를 따로 제공하도록 강제한 것임을 떠올리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다소 의외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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