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이 총회에서 대리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때 대리인이 지참하는 위임장. 그런데, 대리인이 조합원으로부터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위임받았지만 위임장을 지참하지 않고 총회에 참석하여 의결권을 행사하고 나중에 위임장을 제출한 경우 의결권 행사는 유효한가?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총회에 위임장을 지참하지 않았으므로 대리인으로 인정될 수 없고 따라서 의결권 행사가 무효라는 해석. 그리고, 조합원 본인의 진정한 위임의사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이상 위임장을 지참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의결권 행사가 무효로 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위임장’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리권을 수여하는 행위에 대해 서면 등 어떠한 형식을 요구하는 입법례도 있지만, 우리 민법은 수권행위에 관하여 어떠한 방식도 요구하지 않는다. 즉, 서면으로도 할 수 있지만 구두로도 할 수 있고 나아가 묵시적인 의사표시로도 할 수 있는 이른바 ‘불요식행위’인 것이다.

대리인에게 위임장이라는 서면을 교부하여 상대방에게 제시하도록 하는 방법이 널리 행해지지만, 이러한 경우에도 위임장은 ‘대리권의 유무를 결정짓는 증서’가 아닌 ‘대리권을 주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리의 기본 법리이다.

이러한 원칙은 총회의 의결권 대리행사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만, 도시정비법이나 정관이 의결권 대리행사에 관하여 특별히 제한하고 있는 경우에는 그 범위 내에서만 제한을 받는 것이다.

관련 규정이 의결권을 명시적으로 제한하지 않은 경우까지 함부로 이를 확대해석하여 위임의 방식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합원들의 의사표시를 무효로 본다면 조합원들의 의사결정의 자유가 심각히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결권 대리행사를 제한하고 있는 도시정비법의 규정은 어떠한가. 도시정비법은 ‘조합원이 권한을 행사할 수 없어 배우자나 직계존비속, 형제자매를 대리인으로 정하여 위임장을 제출하는 경우’ 대리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리인의 자격을 조합원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로 한정하고, 위임장을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위임장을 반드시 총회 이전에 제출해야 한다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이에 비해,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대리행사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상법을 보면, 도시정비법처럼 대리권의 자격을 한정하지는 않지만 ‘주주가 대리인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면을 총회에 제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회에’ 제출해야 한다는 것은 총회가 끝나면 제출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실제로 회사의 주주총회에서는 진정한 위임의사를 떠나 위임장이 없는 대리인은 총회에 입장시키지 않고, 그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더라도 무효로 본다.

생각컨대, 상법이 주주총회에서 위임장을 ‘총회에’ 제출하도록 제한해 놓은 것은, 주식회사의 경우 주주나 대리인의 자격에 아무런 제한이 없어 주주총회장에서 바로 대리권 유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증명방법을 정형화할 필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규정의 차이를 무시한 채 주주총회의 의결권 대리행사 규정과 이에 대한 판례를 조합원 총회에 그대로 들이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조합원의 진정한 위임의사가 확인되는 이상 단지 위임장을 사후에 제출하였다는 이유로 의결권 행사의 효력을 쉽사리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것. 이것이 위임장의 존재 이유에 충실한 해석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총회 이후에 위임장이 제출된 경우라 하더라도 그 의결권 행사가 유효하다고 보는 판결이 나오고 있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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