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한국주택경제신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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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공사감리자로 지정된 건축사가 현장에 왔다가 놀라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단독주택이나 상가 몇 동 철거하겠거니 예상했다가, 고층 아파트를 보고 놀라는 겁니다. 아파트 철거 감리를 해본 경험이 없는 건축사가 감리업무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A정비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건축물관리법이 시행됨에 따라 해체공사 시 감리자 지정이 의무화됐다. 해체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업계에서는 현실이 반영되지 않는 무책임한 제도라는 비난 여론이 커지고 있다. 해체공사감리자를 순번제로 지정함에 따라 대규모 철거공사에 대한 감리경험이 없는 감리자가 지정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안전과 직결되는 감리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 사업지연 등의 부작용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건축물관리법에 따르면 건축물 해체공사를 진행할 때는 건축사법이나 건설기술 진흥법에 따른 감리자를 지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지자체는 건축사 등을 해체공사감리자로 모집해 건축물 철거 공사 시에 배치하고 있다.

하지만 공사 규모 등에 따른 감리자의 인력이나 기술력에 대한 검증 절차가 없다보니 일선 현장에서 철거감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사례가 적지 않은 상황이다.

현행 건축사법에 따른 감리자격이 있는 자는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건축사나 건축사사무소에 소속된 건축사로 규정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는 건축사 등록증이 있다면 인력 규모나 자본금 등에 상관없이 신고만으로 개설이 가능하다.

이렇다보니 건축사사무소는 소규모 사업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국토교통 통계누리’에 따른 지난해 기준 전국의 건축사사무소 1만2,606개소 중에서 개인사업자가 9,223개소에 달한다. 전체 건축사사무소의 70% 이상이 소규모 개인사업자라는 것이다. 소형 법인까지 합치면 약 80~90%가 소수의 인원이 근무하는 건축사사무소로 추정되고 있다.

해당 통계에 따르면 건축사사무소는 1만2,000여개소에 달하지만, 건축사 자격등록건은 1만5,358명에 불과하다. 건축사사무소 1곳당 평균 1.2명의 건축사가 근무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대규모 철거사업을 진행하는 정비사업에 소규모 건축사사무소가 철거감리를 담당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감리자 지정도 행정청이 모집한 감리자격자를 순번제, 이른바 ‘뺑뺑이’로 선정하다보니 사업 규모에 따른 감리능력을 따로 검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서울시의 경우 공사규모에 따른 감리자 보유인력 기준을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허술하다는 지적이 많다.

시는 연면적과 높이에 따른 감리자 보유인력수를 충족해야 감리자로 배정하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건축사·특급기술인 1인 이상과 건축사보·초급기술인 2인 이상이면 모든 규모의 철거감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건축사 1명을 포함해 3명의 감리(보조)자가 있다면 연면적 10만평 규모의 대단지 철거공사 감리자로도 배치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일선 현장에서는 오히려 감리자가 정비사업을 기피하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재개발 현장에서는 감리자로 지정된 건축사가 능력 부족을 이유로 감리업무 포기를 선언한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대규모 철거감리에 대한 경험이 없는 건축사가 감리책임에 대한 부담을 느껴 감리자 지정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재건축·재개발은 일반건축물 철거와는 규모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소형 건축사사무소가 감리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대규모 사업을 진행하는 정비사업의 특수성을 감안해 감리자 지정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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