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한국주택경제신문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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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안전을 강화하는 것은 시대적인 흐름이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법령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건축물에 대한 안전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맞춰 지난해 4월말 제정된 건축물관리법이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5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법령에는 건축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안전한 철거를 진행하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법령 제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새로운 제도 도입에 따른 준비 부족과 민간에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건축물 관리법 시행된 지 불과 4개월만에 업계의 반발을 사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건축물관리법에 따르면 건축물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행정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해체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해체계획서를 작성해 건축사나 기술사 등의 검토를 받은 후 행정청에 제출해야 한다. 특수구조 건축물이나 10톤 이상의 장비를 올려 해체하는 건축물, 폭파로 해체하는 건축물 등은 행정청이 한국시설안전공단에 해체계획서 검토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해체계획서 검토를 통과하는 것이 이른바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시설안전공단에 따르면 건축물관리법 시행 이후 재건축·재개발 관련 해체계획서는 약 100건 가량 검토를 신청했다. 하지만 계획서 검토를 통과한 곳은 극소수이거나,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시설안전공사 담당자는 “건축물관리법 시행 초기이다 보니 해체계획서 작성이 부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해체계획서 검토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긴 어렵지만, 부적정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한국시설안전공단의 해체계획서 검토 기준이 과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거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체계획서를 검토한 공단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통과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의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의 한 재건축단지는 해체계획서 검토 과정에서 수차례 보완 결과가 나오면서 약 2개월 가량 철거공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 단지는 철거에 앞서 해체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했지만, 공단의 검토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공단의 보완 사항을 보충해 다시 제출했지만, 지속적으로 보완 내용만 통보를 받았다.

문제는 해체계획서 작성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이나 서식 등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해체계획서는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건축물 해체계획서의 작성 및 감리업무 등에 관한 기준’을 토대로 작성하게 된다. 하지만 해당 기준은 사실상 작성 목록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체계획서 작성을 위해서는 보다 자세한 실무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건축물 해체와 구조 안전에 대한 기술자로 구성된 유명 업체에 해체계획서 작성을 의뢰했는데도 검토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공단에서 요구한 사항을 모두 보완해 재차 검토를 요청했지만, 여전히 보완만 요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공단에 문의를 해도 구체적인 작성 방법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철거공사가 지연되면 금융비용이 늘어나 조합원의 부담이 커지는 만큼 신속한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시설안전공단은 접수된 해체계획서가 내부 평가기준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일 뿐 책임 회피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관계자는 “철거 과정에서의 안전과 인·허가가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내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있다”며 “해체계획서 검토 결과 적정률(통과비율)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있어 실무 가이드라인과 교육 등을 진행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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