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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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택공급량을 늘리라’는 주문에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 눈을 돌렸다. 그동안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했던 정비사업이지만, 사실상 도심지 내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사업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8·3대책을 통해 총 13만호 이상을 추가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재건축·재개발을 통한 주택공급량은 전체 공급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7만호로 예상했다. 특히 재건축의 경우 5만호 이상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으로 8·3대책에서 단일사업으로는 가장 많은 기대치가 반영됐다. 물론 기존 재건축·재개발 방식이 아닌 공공방식을 도입한 경우로 한정했다. 정부의 발표에 사업별로 반응은 달랐다. 장기간 사업이 지연되거나, 사업성이 낮은 재개발구역에서는 적극적인 도입 의사를 밝히고 있다. 반면 재건축은 500%에 달하는 파격적인 용적률에도 냉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공공재건축에 대한 일선 현장의 반응이 차갑다. 사업기간 단축과 높은 용적률 등의 유인책을 내놨지만, 강남권의 재건축단지들은 공공재건축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재건축단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했던 정부는 당황함이 역력하다. 홍남기 부총리가 직접 홍보에 나서고,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재건축·재개발을 주택공급처로 생각하지 않았던 정부가 급하게 내놓은 정책적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는 아직 공공재건축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건축단지가 공공재건축에 싸늘하기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용적률 500% 상향? 서울시 35층 규제에 가로 막혀 ‘유명무실’=공공재건축의 핵심은 용적률을 대폭 상향해 주택공급량을 늘린다는 점이다. 용적률을 최고 500%까지 높이는 대신 일부를 공공이 회수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용적률 상향과 함께 층수도 최고 50층까지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용적률이 아무리 높더라도 층수가 제한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용적률과 층수는 필요충분조건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울시의 층수 정책이다. 그동안 시는 주거지역의 층수를 최고 35층으로 제한해 왔다. 그동안 업계에서 줄기차게 층수제한 완화를 요구했지만, 정책상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정부의 발표대로 50층 완화가 적용될지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층수 문제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정부는 최근 해명자료를 통해 층수에 대해 서울시와 이견이 없다고 강조했다.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공공이 참여하는 경우 최대 50층까지 허용하겠다는 대책에 서울시도 동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해명은 되레 층수 제한에 대한 확신만 심어줄 꼴이 됐다. 용적률 상향을 위해서는 종상향이 필요하고, 준주거지역으로 상향하는 경우에 한해 층수제한을 50층까지 허용하는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용적률 상향이라는 당근책이 층수에 막힐 가능성이 높은 만큼 굳이 공공참여형 재건축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높은 상황이다.

▲인허가 단축하겠다는 정부… 공공지원제도에 또 공공이 참여=정부가 발표한 공공재건축의 또 다른 장점은 공공의 참여로 인허가기간이 대폭 단축된다는 점이다. 재건축은 사업기간이 단축될수록 사업비용이 줄어들어 개발이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사업기간 단축은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공공이 참여하더라도 사업기간이 실제로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이미 서울시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공공관리제도(현 공공지원제도)를 의무적으로 적용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공공관리제도는 시공자 등 협력업체 선정과정에서의 부조리를 줄이고, 인허가를 신속하게 진행해 조합원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당시 서울시장은 조합원 1명당 평균 1억원 이상의 부담금이 절감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공공관리제도가 도입된 이후 되레 사업이 더 지연됐다는 점이다. 한남재정비촉진지구와 성수재정비촉진지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시는 공공관리제 도입에 앞서 한남지구와 성수지구를 공공관리시범지구로 지정하고, 사업을 추진해왔다.

결과적으로 경기도에서 비슷한 시기에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광명재정비촉진지구와 비교하면 사업은 한참 뒤쳐져 있다. 광명지구의 경우 일부 구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반면 한남지구와 성수지구는 한남3구역이 지난해 사업시행인가를 받았을 뿐 대부분 조합설립단계에 머물러있다.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더라도 인허가가 빨리 진행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심지어 공공재건축의 주요 적용대상으로 평가되고 있는 잠실5단지와 은마아파트는 공공관리제를 적용 받고 있지만, 오히려 시가 집값 상승을 우려해 고의로 사업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부가 행정을 통한 사업기간 단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공재건축, 공공자금으로 사업 지원?… 시공자 선정시기 ‘원위치’해야=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이 장기간 지연되는 구역의 원인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비사업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사업자금은 분양을 하기 전까지 시공자로부터 대여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결국 시공자를 선정하기 전까지 수많은 협력업체들을 선정해 ‘외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구조인 셈이다.

공공재건축을 적용할 경우 LH·SH나 정부·지자체가 사업자금을 지원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서울시가 공공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만큼 시공자 선정은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가능할 전망이다.

당초 시는 공공관리제도를 도입하면서 공공융자를 통해 자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이었지만, 현실은 ‘쥐꼬리’ 융자만으로는 사업추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일선 현장에서는 공공관리제 도입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상’으로 협력업체에게 용역을 맡기고, 시공자 선정 이후에 용역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공공재건축의 경우 사업추진 과정에서의 용역비용이나 운영비 등을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면 시공자 선정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시공자 선정시기를 조기화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건설사가 제안하는 특화 등의 설계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설계자와의 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는 공공지원제 적용 시 사업시행인가 이후에 시공자를 선정하는 만큼 설계 변경 등이 불필요해 사업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시공자 선정 이후 설계 변경을 진행하고 있다.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인상 등의 문제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사업 초기에 시공자를 선정해 공공, 협력업체 등과 업무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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