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비법은 국토부장관이나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등 행정청에 정비사업에 관한 전반적인 감독권을 부여하고 있다.

‘정비사업의 시행이 도시정비법 또는 도시정비법에 따른 명령·처분이나 사업시행계획서 또는 관리처분계획에 위반되었다고 인정되는 때’ 사업시행자 등에게 처분의 취소·변경 또는 정지, 공사의 중지·변경, 임원의 개선 권고,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도시정비법 제113조).

조합에 대하여 처분 취소, 공사 중지 등의 조치까지 취할 수 있어 무시무시한 느낌이 들지만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정비사업의 시행이 도시정비법 또는 도시정비법에 따른 명령·처분이나 사업시행계획서 또는 관리처분계획서에 위반되어야 한다’는 대단히 엄격한 조건이 먼저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행정청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조합이 밉다고 아무 때나 감독권을 발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위법 상황을 바로잡는 차원에서 행정청에 일반적 감독권을 부여하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법치행정의 원리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

문제는 행정청이 언제나 법의 정신을 충실히 구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최근 반포1·2·4주구 조합이나 은마아파트 추진위원회가 선거관리규정의 해석을 두고 구청과 겪고 있는 갈등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가 공공지원(서울시는 시종일관 ‘지원’을 ‘규제’나 ‘통제’로 해석하는 신묘함을 보여 준다)을 빌미로 작성‧배포해 관내 모든 구역에 강매하고 있는, 비현실적으로 복잡하고 번거롭기로 악명 높은 선거관리규정이 갈등의 싹이었다.

서울시 선거관리규정에 “정수 이상의 선관위원 후보자가 등록된 경우로서 대의원회 또는 선거인의 1/10 이상의 ‘요청’이 있는 경우 선관위원의 선임을 구청장에게 ‘의뢰’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구역마다 일정 비율로 존재하기 마련인 반대 성향 조합원들이 전체 10분의 1 이상의 연명으로 반포1·2·4주구 조합에 선관위원의 선임을 구청장에게 ‘의뢰’해 달라고 ‘요청’한 모양이다.

조합은 대의원회를 통한 정상적 선관위 구성절차를 밟고 있었기에 구청장에게 선관위원 선임을 ‘의뢰’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기존절차를 이어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구청으로 몰려갔고 구청장에게 직접 선관위원을 선임해 달라고 ‘의뢰’하였다.

규정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일부 조합원들의 요구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문제의 선거관리규정은 구청장이 직접 선관위원을 선임하기 위해서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치도록 정해놓았다. 10분의 1 이상 조합원들이 조합에 ‘요청’하는 것이 1단계. 그리고 ‘요청’을 받은 조합이 그 판단에 따라 구청장에게 선관위원의 선임을 ‘의뢰’하는 것이 2단계.

1단계의 ‘요청행위’는 10분의 1 이상의 조합원들이 조합에 대하여 하는 것이고, 2단계의 ‘의뢰행위’는 조합이 구청장에 대하여 할 수 있는 것이다. 1단계의 ‘요청권’은 1/10 이상의 조합원들에게, 2단계의 ‘의뢰권’은 조합에게. 이 단순한 규정의 해석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가.

2단계 ‘의뢰행위’를 일부 조합원들이 직접 구청장에 대하여 할 수 있다거나, 조합의 ‘의뢰행위’ 없이도 구청장이 선관위원을 선임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선거관리규정에 사용된 언어의 통상적 의미를 완전히 벗어난다. 법 해석의 첫걸음이자 기본 중의 기본인 ‘문리해석’ 위반이란 얘기다.

무릇 공무를 담당하는 이들이라면 규범이 자의적으로 해석·적용되는 순간 법치행정이 인치행정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엄중한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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