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은 아파트, 상가 공사를 실시하기 위해 시공자와 도급계약을 체결한다. 도급계약은 일의 완성을 부탁받은 자(수급인)가 일을 하기로 약정하고, 부탁한 자(도급인)가 그 일이 완성되면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민법 제664조)을 의미한다.

그러나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시공자는 단순히 공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비 대여 등 사업 진행에 반드시 필요한 역할까지 담당하기에 시공자는 수급인을 넘어 중요한 파트너라 할 수 있다.

시공자와 조합은 사업을 마칠 때까지 우호적인 관계 아래 서로 협조하며 맡은 역할을 다한다. 그런데 가끔 지역 부동산 시장 변화, 시공자와의 분쟁, 조합 내부의 사정 등으로 인하여 공사계약이 해제되는 경우가 있다. 조합과 시공자가 충분히 소통하여 합의 해제에 이르면 문제가 없겠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 법적분쟁이 뒤따른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공자는 경쟁 입찰을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였고 나아가 기대 수익을 얻을 기회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손해가 매우 큰 것이다.

조합은 여러 사유를 들며 공사계약 해제를 통보하고, 새로운 시공자를 선정하고자 입찰절차를 진행하는데, 이에 대해 시공자는 법원에 위 입찰절차진행의 금지를 구하며 공사계약 해제를 할 수 없다고 다툰다.

위 소송에서는 공사도급계약에서 정하고 있는 계약해제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도급인은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민법 제673조 규정에 따라 계약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이 된다.

이에 대하여 ①민법 제673조는 임의규정에 해당하므로 계약당사자 사이에 계약해제에 관해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는 이상 위 규정에 따른 계약해제권 행사는 할 수 없다는 견해와 ②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공사도급계약에서도 민법 제673조에 따른 계약해제권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하급심 판결에서도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조금씩 다른 판단을 하는 듯하다. 공사도급계약에서 정한 해제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도급인의 지위에 있는 조합이 민법 제673조에 근거하여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볼 여지가 있으며, 공사도급계약에서 계약해제의 요건을 정하고 있는 사정만으로 민법 제673조의 적용이 배제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시가 있는가 하면, 정비사업에 있어 공사도급계약은 단순한 도급계약과 달리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사업경비 대여나 분양업무 수행 등을 비롯해 재건축사업 시행과 관련된 복잡한 법률관계를 정하고 있어 도급에 관한 민법 제573조가 곧바로 적용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공사도급계약에서 정한 계약해제 사유 이외에 별도로 조합이 민법 제673조에 따른 공사도급계약 해제 주장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시도 존재한다.

사견으로는, 공사도급계약에서 명시적으로 민법 제673조에 따른 계약해제권의 적용의 배제를 정하지 않은 이상, 조합은 위 규정을 근거로 시공자와의 공사도급계약 해제를 주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계약해제 사유를 엄격하게 보는 것은, 계약 당사자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고, 계약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정변경을 고려하지 못하며, 계약해제에 대해 과도한 주의의무를 요구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공자 선정은 전체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고 조합원의 이익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므로, 조합으로서는 조합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야 하고 총회 의결 등 필요한 절차도 면밀히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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