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를 개최할 수 있는 것조차 행운이라 여겨야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한 모양이다. 총회는커녕 절대적으로 보호받던 종교적 집회의 자유도 상당히 제약을 당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정비사업 인가청 역시 일찌감치 총회개최를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관할 구역 내 조합들에 하달하여 정부의 방역 활동에 협조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정기총회 시즌을 맞아 여느 때처럼 총회를 소집하였던 조합들이 부랴부랴 연기 절차를 밟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소집된 총회의 연기를 결정하면서 실무진이 당장 궁금해하는 사항은 어떤 절차를 거쳐야 적법한 연기로 인정받을 수 있느냐는 것.

총회 연기의 결정은 많은 조합의 정관이 이사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규율하고 있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이사회를 개최하지 못한 채 소집권자인 조합장이 직권으로 연기를 결정하였다면 위법한 것일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연기의 적법 여부를 둘러싸고 분쟁이 벌어질 현실적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설령 시비가 붙는다고 해도 이사회 심의를 생략한 하자는 총회 연기 결정을 무효로 만들 만큼의 큰 하자로 보기 어렵다. 심지어 연기 결정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현실적으로 어떤 실익이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법원으로 문제를 들고 가면 사안을 제대로 판단 받지 못하고 문전박대(법률 용어로는 ‘각하’)당할 공산이 크다.

총회 연기 관련 빈번하게 거론되는 소송상 이슈는 ‘서면결의서 재사용’이다. 서면결의는 특정한 일시와 장소에서 개최되는 총회 참석이 곤란할 때 부득이 인정되는 보충적 의결권 행사방법이므로 연기 결정으로 일시와 장소가 변경된 이상 새로 서면결의서를 제출하는 것은 별론, 연기 이전에 제출된 서면결의서를 재사용할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게 마련이다.

서면결의가 특정한 일시 장소에 직접 참석이 어려운 조합원들을 위한 것이니 일시 장소가 바뀌면 서면결의서 제출의 전제 상황이 바뀌는 것이고 따라서 연기 전 총회를 위해 제출된 서면결의서를 다시 사용할 수 없다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왜 굳이?’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안건의 내용이 변하지 않았고 기왕에 서면결의를 통해 의사를 표시한 마당에 단순히 일시와 장소가 바뀌었다고 서면결의서를 무효로 만든다는 건 형식논리에 얽매여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서면결의서 징구에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든다는 조합운영 현실에 조합원의 의결권을 가급적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까지 보태보면 부득부득 서면결의서를 무효로 돌려야 한다는 과도한 주장에 선뜻 동조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서면결의가 특정한 일시와 장소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까지 무시하거나 부정하여서는 곤란하다. 총회 연기 시에 기존 서면결의서를 철회할 수 있음을 알리고 만약 철회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유효한 의결권 행사로 인정해 연기된 총회에 사용된다는 점을 충실히 안내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각급 법원이 “연기 전 총회와 연기 후 새로 개최되는 총회의 안건이 같고 단지 개최 일자만 연기된 것일 뿐이므로 당초 서면결의서를 제출하여 의사를 표시한 조합원들이 그 의사를 철회하지 아니하는 한 그 서면결의서는 연기 후 새로 개최되는 총회에서도 유효하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조합운영 현실과 의결권 보호의 당위를 두루 참작한 것이어서 매우 설득력이 높다. 총회 연기가 그 어느 때 보다 빈번한 상황에서 법원의 입장이 현실과 괴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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