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홍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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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옥석 고르기가 마무리됐다. 지난 9년에 걸친 출구전략 끝에 수확을 기대할 씨앗들만 남게 된 것이다. 하지만 생존에 성공한 구역들이 사업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규제의 칼끝은 여전히 정비사업을 겨누고 있어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오히려 남겨진 구역들은 무한경쟁에서 다시 성공을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적자생존을 지나 속자생존이 도래한 시대가 된 것이다.

지난 2011년 10·26 재보선 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면서 출구전략은 현실화됐다. 시장 후보시절 박 시장은 뉴타운·정비사업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전면 철거 방식의 재건축·재개발이 과도하게 추진되면서 원주민 재정착과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12년 1월 ‘뉴타운·재개발 수습방안’을 발표한다. 서울시 내 정비구역은 총 1,300개 구역으로 866곳은 갈등조정 대상으로, 610곳은 실태조사 대상으로 지정하고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시는 착공 이전단계에 있는 683곳 중 324곳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주민이 사업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약 245개 구역이 해제됐다. 또 나머지 구역 중에서도 추진 주체가 있는 327곳에 대해서는 A(정상추진)·B(정체)·C(추진곤란) 3개 유형으로 구분해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비사업의 출구전략은 뉴타운·재개발 수습방안이 완료된 이후에도 지속됐다. 시장의 직권해제 권한이 법제화되고, 일몰제가 적용되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구역들이 해제됐다. 그야말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적자만이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 닥친 것이다. 특히 서울시의 경우 사실상 해제를 목적으로 제도가 시행되면서 상당수의 정비구역들이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적자생존의 시대에서 생존에 성공한 구역들은 부동산시장 침체 상황에서 사업을 추진해야 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각종 규제가 시행되면서 속도 경쟁을 펼쳐야 했다. 이른바 정비사업의 속자생존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속자생존 시대의 첫 포문 연 규제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였다. 재건축의 최고 규제로 평가 받고 있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다시 시행에 들어가면서 유예 적용을 받기 위한 속도전이 펼쳐졌다. 2017년 12월 31일까지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조합에 한해 환수제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기준이 완화된다. 당장 4월까지 입주자모집승인을 신청하지 못하면 분양가상한제에 적용 받는 만큼 사업 속도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상한제 적용이 3개월 연기되긴 했지만, 총회 개최 등을 금지하고 있어 마냥 안도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 분양가상한제는 사업성을 가르는 강력한 규제다. 분양가상한제를 면제 받기 위해 조합들이 목숨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한제 면제는 말 그대로 ‘대박’인 셈이다.

반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 받는 현장에서는 ‘로또 분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일반분양가격을 강제로 낮추는 제도이다 보니 분양을 받게 되면 주변 시세만큼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조합과 조합원이 누려야 할 이익이 수분양자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정비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무작정 속도전을 벌이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규제 정책으로 정비사업은 다시 시간과의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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