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진행 도중에 조합원의 지위에서 이탈하여 현금청산자가 된 자들에게 그동안 조합이 사용한 정비사업비의 일부를 분담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는 꽤 오래전부터 논쟁거리였다. 종래 하급심에서는 현금청산자는 그동안 발생한 조합의 사업비를 분담하여야 한다는 판결과 현금청산자에게 사업비를 분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혼재되어 있었다. 강제가입제를 취하는 재개발사업과 임의가입제를 취하는 재건축사업을 달리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다 2014.12.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2013두19486) 재개발사업의 현금청산자에 대한 정비사업비 분담 문제는 최종 정리가 되었고, 2016.8. 대법원이 재건축사업에 대해서도 재개발과 같은 판결을 하면서(2015다207785) 재개발·재건축을 불문하고 현금청산자에 대한 사업비 분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현금청산자에 대한 정비사업비 분담의 근거=위 대법원 판결은 조합은 더 이상 조합원 지위에 있지 않은 현금청산자에게는 구 도시정비법 제61조제1항(현행법 제93조제1항)을 근거로 비용과 수입의 차액인 부과금을 부과·징수할 수는 없고, 다만 현금청산자가 조합원의 지위를 상실하기 전까지 발생한 정비사업비를 분담하여야 한다는 취지를 ‘미리’ i) 조합 정관이나 ii) 조합원총회의 결의 또는 iii) 조합과 조합원 사이의 약정으로 정한 경우에 한하여 현금청산자에게 정비사업비를 분담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즉, 조합과 그 조합원 사이의 법률관계는 단체법적 법리와 사적자치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점을 전제로, 현금청산자에 대한 정비사업비 분담의 근거를 명확히 한 것이다.

▲정관에서 언제, 어떻게 규정하였는지가 중요=위 대법원 판결 이후 전국의 많은 조합에서 정관을 개정하여 현금청산자들에게 정비사업비를 부과시킬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하였고, 이를 근거로 하여 많은 소송이 발발되었다. 그러나 조합마다 희비가 갈렸는데, 정관 조항을 규정한 시기와 그 내용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었다.

우선, 정관 조항은 현금청산자로 되기 이전부터 ‘미리’ 존재하여야 한다. 또한, 정관에 현금청산자에 대한 정비사업비 분담의 기준, 비율, 범위 등에 대하여 얼마나 명시적으로, 예측가능하게 규정하고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단순히 “조합원은 정비사업비 등 비용납부의무를 부담한다”는 조항(표준정관 제10조제1항제5호 또는 제6호)으로는 부족하다. 이는 결국 정관 해석의 문제로 귀결될 텐데, 예를 들면 “현금청산기준일까지 발생한 각종 정비사업비(조합운영비, 사업비, 용역비, 제세공과금 등 일체) 중 해당 현금청산자의 종전자산평가금액 비율에 따라 산정한 금액을 공제한 후 현금청산금을 지급한다”는 정도로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정관 조항 안에 구체적인 산식을 기재하는 것도 가능하다.

조합이 패소한 판결은 대부분 분양신청기간 만료 이후 즉, 현금청산자가 된 이후에 정관변경이 이루어진 사안이거나, 근거 정관 조항이 구체적이거나 명확하지 않은 사안들이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정관 규정 외의 별도의 총회 결의가 필요할까=정관 규정에 따라 현금청산자에게 사업비를 분담시키는 경우에도 정관 규정 외에 따로 현금청산자의 분담에 관한 총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위 대법원 판결이 현금청산자의 정비사업비 분담 근거를 정관, 총회 결의, 약정으로 병렬적으로 설시하였고, 정비사업비의 ‘조합원별’ 분담내역에 대하여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도시정비법 조항은 조합원이 아닌 ‘현금청산자’에게는 적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서울행정법원 2016구합67233판결).

▲조합의 ‘이익’이 고려되어야 하는지=현금청산자는 스스로 불확실성에서 벗어나는 대신 확실한 현금청산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정비사업의 성패라는 위험부담의 대가로 사업의 이익을 누리는 조합원과는 달리 취급되어야 한다. 즉, 현금청산자는 손실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반면 조합의 사업으로 인한 이익도 취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금청산자의 정비사업비 분담금 산정에 조합의 사업으로 인한 이익을 반영할 이유는 없다.

위 대법원 판결에서도, 현금청산자가 조합원 지위를 상실하는 분양신청기간 만료 시점에서는 조합의 수입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으므로 사업의 이익 또는 손실을 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더 이상 조합원이 아닌 현금청산자에게 사업의 이익 또는 손실을 부담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금청산자에게는 구 도시정비법을 근거로 비용과 수입의 차액인 부과금을 부과·징수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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