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후 30년 가까이 지난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를 통해 모든 승강기를 교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아파트에는 지하층이 없어서 1층 입주자들은 사실상 승강기를 이용할 일이 없다. 2층 입주자들도 승강기 이용 빈도가 현저히 낮다. 이들도 다른 층 입주자들과 동일하게 승강기 교체비용을 부담해야 하는가.

공동주택관리법이나 아파트관리규약에는 1·2층 입주자들이 다른 층 입주자들과 같은 금액의 승강기 교체비용을 내야 하는지, 아니면 적게 낼 수 있는지에 관한 규정은 없다. 관련 규정에는 세대당 주택공급면적을 기준으로 장기수선충당금을 산정하도록 정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에 판례에서 문제가 된 사례는 이렇다. 승강기를 교체하는 비용으로 세대당 매월 5만 원씩 징수하여야 한다. 모든 세대로부터 균등하게 징수하자는 의견과 1·2층 세대에는 일부 감경하여 매월 2만 원만 징수하자는 의견이 나뉘어 있었다. 최초 설문조사 결과 차등징수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공용시설물 교체에 필요한 장기수선충당금은 차등부과해서는 안되고 균등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다”는 국토교통부의 질의회신 내용을 적은 안내문과 함께 동의서를 배부하였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질의회신은 “1·2층 입주자에 대한 승강기 유지비 감면에 대해서는 주택법령에 별도로 정한 바가 없으므로, 입주자 등의 의견을 합리적으로 반영해 감면 여부와 얼마를 감면할지 등을 관리규약에 정해 운용하면 될 것으로 사료된다”는 내용일뿐이었다.

동의서를 제출한 세대 중 142세대가 균등부과를, 120세대가 차등부과를 선택하였고, 입주자대표회의는 이 동의서를 근거로 승강기 교체비용에 필요한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모든 세대에 5년 동안 매월 5만 원씩 부과한다고 통보하였다.

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안내문 내용이 국토교통부 질의회신과 달리 적혀 있는 점, 1·2층 입주자들 주장의 구체적 내용과 합리성, 차등 부과하는 다른 아파트의 사례 등을 안내문에 함께 적었다면 그와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120세대가 차등부과를 선택한 것은 입주자들 사이에서도 차등 부과에 상당한 공감대가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점에 주목하였다.

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입주자들 사이 의견 대립, 균등 부과와 차등 부과의 장·단점, 다른 아파트의 사례 등을 입주자들에게 충분히 알린 후 추가적인 의견 수렴 등의 절차를 거쳐 합리적인 결정을 하였어야 한다고 보았다.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1·2층 입주자들에게 불리한 결정을 한 것은 잘못이라고 보아 1·2층 입주자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집합건물의 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 문제에 대해 법령이나 규약에서 일일이 정할 수는 없다. 이런 문제는 결국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의를 통해 결정된다. 다수결의 원리가 적용되므로 수적으로 열세인 쪽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 소수의 사람들을 승복시키려면 공평하고 충분한 논의 절차가 필요하다.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사안을 결정하는 경우에 다수 쪽이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논의 절차에 참여하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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