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의 운명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고들 한다. 조합장이나 추진위원장도 사람인지라 언제까지나 정상적 상황에서 온전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조합장이나 추진위원장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으로는 질병이나 불가피한 여행 혹은 인신구속 등 개인적 사정으로 인한 유고, 임기만료, 사임이나 해임 등이 전형적이다. 


이 모든 비상적 상황에 아무런 대비가 없다면 조합이나 추진위원회는 즉시 업무마비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때문에 조합의 정관이나 추진위원회의 운영규정은 예외 없이 급박한 상황을 대비하여 유고시 직무대행제도, 임기만료나 사임·해임시 직무수행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유고시의 직무대행자, 임기만료되거나 사임 혹은 해임된 조합장·추진위원장의 업무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 하는 해묵은 논쟁 말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두 견해가 날선 대립을 지겹도록 이어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유고시 직무대행권이나 임기만료·사임·해임시 직무수행권에 어떠한 제한도 없으며 창립총회개최, 협력업체 선정이나 변경, 심지어 관리처분계획수립 업무까지도 문제없이 수행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논거는 직무대행권·직무수행권의 근거가 되는 정관이나 운영규정이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수행 가능한 업무의 범위를 특별히 제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비상시국에서의 직무대행권·직무수행권은 정관이나 운영규정에 특별히 언급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상적·통상적인 업무로 그 범위를 제한하여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비상시국을 타개하기 위한 임시장치’라는 제도자체의 본질로부터 업무범위가 제한된다는 결론이 당연히 도출된다는 주장이다. 


단언컨대 전자의 견해가 옳다. 직무대행권이나 직무수행권의 범위는 결국 정관이나 운영규정 해석의 문제인데 정관이나 운영규정에서 말하는 ‘직무’란 비상시국에서도 중단 없이 지속되어야할 그 정상적 ‘직무’를 일컫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직무’라는 용어의 일의성과 명징성 때문에 이 직무를 ‘통상사무’로 제한하여 새기는 두 번째 해석론은 터무니없이 우겨대는 수준이라 미안하지만 설득력이 제로에 수렴한다.


그러나 두 번째 견해가 그 논리의 부재를 인정하고 맥없이 두 손 두 발 들고 순순히 물러났다면 첨예한 견해 대립이 지금껏 이어져왔을 리 만무하다. 이들이 자신의 결론을 뒷받침할 논리적 설명을 사실상 포기하면서도 입장을 바꾸지 않고 꿋꿋이 맞서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대법원 판결이다. 


“임기만료된 대표자의 업무수행권은 급박한 사정을 해소하기 위하여 그로 하여금 업무를 수행하게 할 필요가 있는지를 개별적·구체적으로 가려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 임기만료 후 후임자가 아직 선출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당연히 포괄적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고 할 것”(대법원 96다37206판결 등).


이 판결을 근거로 ‘논리적 설명이고 자시고 냉큼 그 입 다물라. 무려 대법원 판결이 여기 있다’며 목소리를 한껏 높여온 것이다.


드높인 목소리가 무안하겠지만 결론은 매우 싱겁다. 


위 대법원 판결은 현재의 정비사업조합에는 결코 적용될 수 없다. 대법원은 임기만료된 조합장의 직무수행에 관해 정관이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도시정비법 제정 이전의 사안에 민법 제691조를 유추적용했고 결론도 민법규정의 해석으로부터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정비법 제정 이후 정관이나 운영규정에 근거한 직무대행권·직무수행권의 문제는 온전히 정관이나 운영규정의 해석 문제이기에 결코 민법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례로 대충 퉁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박일규 대표 변호사 / 법무법인 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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