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정비사업장 내 길고양이 보호에 대한 필요성을 묻는 찬·반 투표 시행에 이어 토론회도 열겠다는 방침입니다. 하지만 길고양이 이주 활동가 등만 패널들로 참석하면서 의견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질 가능성이 높아 토론회로 정의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시는 지난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오는 10일 ‘재개발·재건축 지역 길고양이 보호’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습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토론회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지역 길고양이 보호에 대한 필요성과 개선 방향’, ‘둔촌 지역 아파트 재건축 과정의 길고양이 사례’를 주제로 각각 전진경 동물권행동 카라 상임이사와 김경진 둔촌냥이 활동가가 발표합니다. 또 길고양이 사진작가, 서울대 수의대학 교수 등도 토론자로 참여합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 관계자들에 대한 주제 발표나, 토론 참석자로서 의견개진이 예정돼있지는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정비사업장 내 길고양이 보호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인지 설명회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토론’은 주제를 두고 여러 사람이 각각의 의견을 말하며 논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고교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에서도 ‘토론’은 각자의 입장을 말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반박하면서 자기주장이 옳다는 점을 밝혀 나가는 형식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토론하는 양쪽은 의견에 대한 차이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주장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의견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토론자들이 찬·반 입장을 번갈아가면서 자기주장에 대한 논거를 제시하는 게 ‘토론’입니다.

하지만 시의 토론 주제와 발표자, 토론자들은 길고양이 활동가 등 동물 보호단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 의견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즉, ‘토론’이라는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일방통행식 의견수렴을 위해 무늬만 ‘토론회’ 자리를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토론회라면 적어도 정비사업 관계자도 주제를 발표하거나, 토론자로 참석시켜 ‘토론’을 위한 구성 요건을 맞췄어야 마땅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정비사업 관계자들이 길고양이 보호 정책 마련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할리도 없어 보입니다. 길고양이 보호조치는 생명존중이라는 기본 윤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사람으로서 배려해야 할 정책인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는 길고양이 보호 정책 적용을 재개발·재건축 지역에 한정해 놓은 반면 정작 이해당사자들은 토론회에서 배제시켜 놨습니다. 재개발·재건축은 구역 내 토지등소유자들의 사유재산을 바탕으로 시행하는 사업입니다. 사업 특성상 속도가 지체된다면 사업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미 법에서 정한 수많은 절차에 길고양이 현황파악을 위한 실태조사, 포획 등까지 시행해야 한다면 사업 기간은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시는 이번 토론회에서 재개발·재건축 지역 길고양이 보호를 위한 제도적 개선, 지원 사항 등이 폭넓게 논의된다고 밝혔습니다. ‘토론’의 기본 구성 요건조차 충족하지 못한 상황에서 과연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혁기 기자 lee@ar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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